뒤섞이면 고르기 어렵다. 선악이 뒤섞이면 둘의 구별이 쉽지 않고, 대소(大小)가 뒤섞이면 덩치의 기준이 모호하다. 털자고 하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고, 덮자고 하면 곱지 않은 사람이 없다. 만물은 옥과 돌이 섞여 있다. 한데 옥과 돌이란 게 때론 경계가 애매하다. 나에게 옥이 되는 게 누군가에겐 돌, 심지어 티가 된다. 그러니 세상을 당신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지 마라.

동진(東晉) 시대 갈홍은 도가 계열의 사상가다. 그의 ≪포박자≫는 도교가 하나의 사상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한 저술이다. 그는 이 책 ‘상박편’에서 배움의 도(道)를 이렇게 적고 있다.
“≪시경≫이나 ≪서경≫이 도의(道義)의 큰 바다라면, 제자백가의 글은 이것을 보충하는 냇물이다. 방법이 다를지언정 덕을 닦는 데 무슨 다름이 있겠는가. 옛사람들은 재능 얻는 게 어렵다고 탄식했지만, 곤륜산 옥이 아니라고 야광주를 버리거나 성인의 글이 아니라고 수양에 도움 되는 말을 버리지 않았다. 한나라와 위나라 이후로도 ‘본받을 만한 좋은 말(嘉言)’이 많이 나왔지만, 식견이 좁은 사람들은 자구(字句)에만 매달려 오묘한 이치를 가벼이 한다.”

갈홍은 큰 것에만 매달려 정작 작은 것에 담긴 뜻을 소홀히 하는 세태를 나무란다. ≪시경≫이나 제자백가들의 가르침이 근본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세속의 크기에만 매달리는 어리석음을 꾸짖는다. 이어지는 말도 함의가 같다.
“뿐만 아니다. ‘작은 길(小道)’이라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하고, 너무 넓고 깊어서 머리를 혼란시킨다고도 한다. 티끌이 쌓여 태산이 되고 색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무지개를 이룬다는 걸 모른다. 천박한 시부(詩賦)를 감상하고, 뜻이 깊은 제자백가의 글을 가볍게 여기며, 유익한 금언을 하찮게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참과 거짓이 뒤바뀌고, 옥과 돌이 뒤섞이며(玉石混淆), 아악(雅樂)이 속악(俗樂) 취급을 받고, 아름다운 옷이 누더기로 보이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개탄할 노릇인가.”

옥석혼효(玉石混淆), 옥과 돌이 섞여 있는 게 세상이다. 한데 그걸 가리는 게 쉽지 않다. 누구는 돌을 옥으로 착각하고, 누구는 옥을 돌이라며 버린다. 천박한 글은 마음에 담고, 깊은 글은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의 잣대는 눈금이 다르다. 눈금이 다른 자로 세상을 재니 어찌 길이가 같겠는가. 내가 약이라 여겨도, 누군가는 독이라 버리는 게 세상 이치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작가/시인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