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몇 년 전에 쓴 졸시 한편

오직 하나에 관한 착각

저녁 노을을 등지고 석계역에서
지평선행 전철을 기다리다가
문득 건너편 아파트단지를 본다

수십 개 아파트동 중에서
오직 한 동 유리창 하나만이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수천 개의 유리창이 나를 보고 있지만
오직 그 하나 내 눈에 빛난다
이 무슨 필연이란 말인가

그 유리창을 찾으러 간다면
만날 수 있을까
그때에도 빛날까
다른 유리창이 빛나지 않을까

이렇게 황당한 환상
그녀는 오직 하나 그 유리창일까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미



중학교 영어교과서쯤 될 것이다
golden window 라는 글이 있었다
석양에 비친 먼 먼곳의 유리창을 보고
진짜 황금으로 만들어진 황금창인 줄 알고
아이가 찾아헤매다가
허상임을 깨닫는다는 이야기였다

  쉰이 넘어 팍 쉬어버린 이 나이에도
저녁 노을에 비친 황금창을 보고 가슴이 설렌다
진짜 항금창인 줄 알고 산길 들길을 헤매며
허상을 쫒는 아이처럼 오늘도 나는
황금창을 찾아 헤맨다

  때로는 이름 석자를 찾아
때로는 풍요로운 생활을 찾아
때로는 향긋한 사랑을 찾아
그렇게 헤맸으면서도 아직도
지칠 줄 모르고 거리거리 헤맨다

  이제 더 이상 찾을 것도 없고
찾을 힘도 없고
기댈 언덕도 없는 이 황량한 벌판에서
낡고 모지라지고 스러져가는 몸을 가누면서
아직도 황금창을 찾고 있다

  몇 걸음만 옆으로 비끼면
황금창이 아닌 줄을 확실히 알수 있으려만
잠시만 시간이 흐르면
황금창은커녕 어두워서 구별도 못하게 되련만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도리없이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아직도 황금창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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