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과  수강생
선생과  수강생
스승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한다
고작 악기 하나 가르치면서 스승이라니……
큰 스승님들이 언짢아 하실거다
그냥 선생이라고 불리우고 싶었다
내 입으로는 그것도 차마 말하지 못하고
다만 나를 그렇게 불러주고 그렇게 대해주고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랬다
나는 동네 여기저기 하모니카를 가르치고 있다

하모니카 하나는 죽어라고 가르쳤다
보통 텅블럭연주법을 많이 가르치는데
나는 유블럭연주법을 가르쳤다
한번에 두 시간씩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재촉을 했다
어영부영 시간만 때우거나 느슨한 일정표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랬기에 1년이면 마이나하모니카를 배우고 공연을 다닐 수 있었다
어느 하모니카 가르치는 곳에서 일년만에 이렇게 할 수 있으랴
오로지 나만 이렇게 할 수 있다 라고 홀로 자존심을 키우면서….

초기에는 내 형편이 좋아 받는 수강료는 껌값도 아니었다
그 시절 돈 보고 가르치지 않았다
사명을 가지고 제자들처럼 온몸과 맘으로 가르쳤다
스승까지는 아니어도 선생과 제자들 같았다
적어도 나만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득음을 하고 기술을 하나씩 늘여가는 제자들을 보면서 행복했었다

소설에 나오는 말처럼 정말이지 하루 아침에 가세가 기울어
내가 단돈 백만원이라도 벌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나는 스승은 못되더라도 그몸 그맘 그대로 선생이고 싶은데
새상은… 세상은 그게 아닌가 보다 그렇지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내 제자들은 수강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해서 그렇게 보였고 그렇게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서슬이 시퍼랬다
도레미 음 하나만 틀려도 눈을 부릅뜨고
베이스 하나만 빠져도 언성이 높았다
제자들은 기가 팍 죽어 쥐앞에 고양이었고
말 그대로 카리스마 하나로 천하를 지휘하였다
누가 새로 들어오든지 누가 그만두든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난 돈 보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모니카라는 문화를 전파하는 선생이었으니까

오늘도 돈 백만원을 벌기 위해 1시간 반 대중교통을 타면서
수업이 꽉 찬 날은 점심 먹을 시간도 없으면서 주린 배를 참아가며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뭐는 나빠요 그러면 안돼요 조잘조잘 시끌시끌 @&*#%
제자들은 칼자루를 쥔 수강생이 되어 갔고
나는 그들이 돈으로 보이면서 주눅이 들어 갔다
가르치면서 내가 야단을 친다고 그만두는 수강생들을 수없이 본다
이런!! 쯧쯧, 또 착각을 했나 보다- 난 선생이 아니다 – 난 강사이다
한 명 한 명 그만두는 수강생들을 보며서 나는 또 궁리를 한다
내가 뭘 잘못했지? 어떻게 하면 저들 맘에 쏙 들지?

이제야 나는 터득을 한다
여태까지는 나는 교만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유블럭의 대가라고 저홀로 뻐기면서
주머니에 돈 몇푼 든든하다고 세상을 깔보았던 나는
그 돈 몇푼에 하루 아침에 마음거지가 되어 교만의 벌을 받는 것이다
제자가 있어야 선생도 있는 것이다

나는 새롭게 마음을 잡아 본다 다짐을 하련다
내 책상 앞에 써 놓고 매일같이 나를 채찍질하련다
1. 수강생은 왕이다 – 왕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
2. 나는 그 왕의 시중 드는 사람이다 –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3. 수강생 하나는 2만원이다 – 백명이면 내가 매일 기도하는 2백만원이란다
4. 빨리, 또는 잘 가르치려고 채찍이나 재촉을 하지 말라 – 눈 하나라도 찌푸리면 안 된다
5. 선생과 제자라는 꿈은 빨리 깨고 나는 강사임을 명심한다 – 그것도 싸구려 삼류강사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했다
어서 이 과정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강사와 수강생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마음을 알고 소리를 알고 인생을 아는 몇 사람 더불어
남은 인생 스승과 제자라는 사이를 만들고 싶다

한 십년 뒤면 그럴 시절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