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읽으면 시인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나온
다. 그 이야기 중에서 피그말리온의 사랑이야기가 이 그림의 소제이다.
사악한 삶을 사는 여자들을 본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연이 여성들에게
지워 놓은 수많은 약점들이 역겨워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정말 혼자 산 것이 아니고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한 솜씨로 만든, 눈같이
흰 여인의 상아상과 함께 살았다. 피그말리온이 만든 이 상아상의 여인
은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피그말리온은 자기 손
으로 만든 이 상아상의 여인을 사랑했다.

이 상아상은 살아있는 여인이 가진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이 상아상은 언제 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았고 언제 보아도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았다. 이 상아상을 만든 솜씨는 실로
인간의 솜씨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묘했다.
피그말리온은 틈만 나면 이 상아상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
에서는 인간의 형상을 본떠 만든 이 상아상에 대한 사랑이 샘솟았다.
 
피그말리온은 상아상의 살갗을 만지며 입맞춤을 하고 말을 걸기도 하고
껴안기도 하면서 살았다. 어떤 때에는 눌렀던 자국이 생길지도 모른다
는 생각에 상아상의 살갗을 꼭 눌러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장신구를
상아상에 걸기도 하고 옷도 입혀주고 반지도 끼워주고 목걸이 귀고리를
걸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울 때는 역시 아무것도 걸치지 않
고 있을 때였다. 피그말리온은 이 상아상의 처녀를 자기의 반려라고 생
각하고 있었다.

키프로스 섬이 온통 떠들썩해지는 비너스축제 때 제단에 제물을 바친
피그말리온은 낮은 목소리로 여신에게 소원을 빌었다. <신이시여, 기도
를 들어주시는 신이시여, 저 상아처녀를 ...> 이런 기도를 하려다가 차
마 그럴 용기가 없어서 < 저 상아상 같은 여자를 제 아내가 되게 해
주소서> 라고 기도를 올렸다.

비너스여신은 기도의 참뜻을 알아차리고 기도를 알아들었다는 표적으로
불길을 세 번 하늘로 치솟게 했다. 비너스여신의 축복을 모르는
피그말리온은 집으로 돌아와 상아처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피그말리온은 그 처녀상의 입술에 온기가 있음을
알았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입술을 다시 대 보았다. 역시 온기가 있었
다. 피그말리온은 입술을 떼고 손을 대 보았다. 딱딱하던 입술이 보드라
워졌다.
 
가슴을 더듬어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손끝에서 상아는 부끄러워
지기 시작했다. 상아처녀의 몸에 온기가 돌며 부드러워 지며 손자국이
놀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상아상의 조각처녀는 살아 숨쉬고 말하는 진
짜 처녀가 되었다. 갈라테이아란 이름을 갖게 된 상아처녀는 수줍은 듯
이 얼굴을 붉히며 피그말리온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피그말리온은 그녀
를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껴안았다. 둘은 비너스 신을 초대해서 결혼식
을 올렸고 파로스라는 딸을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장 레온 제롬은 이 그림을 피그말리온의 이야
기 클라이막스에 초점을 맞추어 그리고 있다. 제롬은 이 축복장면을 근
육질의 남자가 소녀의 허리춤을 격정에 겨워 껴안는 모습과 맑은 피부
의 소녀가 그에게로 몸을 활처럼 수그린 모습으로 표현했다.

소녀가 발을 굽히지 못하는 것은 입술부터 사람의 살로 바뀌는 도중이어서
다리는 아직 상아이기 때문이다. 엉덩이를 기준으로 그 위는 따뜻한 인간의
살색이고 그 아래는 아직은 창백한 대리석 빛깔이다. 이 그림은 피그말
리온의 힘찬 키스의 힘으로 갈라테이아가 상아에서 인간의 살로 바뀌는
그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 두 연인은 이
세상의 모든 연인들의 꿈이며 환상이며 현실이다.

이 그림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어보자.
<오 내 사랑 갈라테이아> 피그말리온은 미친 듯이
갈라테이아를 껴안고 키스를 퍼붓고 있다. 공교롭게도 갈라테이아는 조
각받침대 위에 서 있기 때문에 피그말리온보다 위치가 위이다. 피그말
리온은 왼손으로 갈라테이아의 허리를 감싸고 오른손으로는 갈라테이아
의 가슴을 휘감아 안고 입으로는 정열적인 키스를 퍼붓고 있다. 피그말
리온의 키스의 뜨거운 체액이 입을 통해 갈라테이아의 온몸으로 핏줄을
타고 흘러내려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갈라테이아는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가?
온몸을 비틀면서 갈라테이아는 말하고 있다.
< 아이 부끄러워요. 이 손 놓아 주세요> 짐짓 싫은 척
갈라테이아는 왼손으로 피그말리온의 손을 떼어내려 애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오른 손으로는 피그말리온의 목을 감싸 안고 있다.
이 얼마나 모순되면서 적나라한 여인의 마음의 표현인가?
자기를 만들고 자기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 피그말리온의 손을
짐짓 뿌리치는 저 갈라테이아의 마음을 이 세상의
어느 남성이 완전히 이해할 것인가?
여인의 마음은 이해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 

첫번째 그림에는 몇 가지 장치가 있다. 얼싸안고 있는 두 연인들은 일정
한 각도를 이루고 있다. 두 연인들의 머리의 각도, 갈라테이아의 두 팔
의 각도, 피그말리온의 두 팔의 각도, 기울어진 갈라테이아의 엉덩이의
각도. 이 각도가 바로 받침대 위에 선 갈라테이아와 나무계단에 선 피
그말리온의 키의 차이에서 오는 각도이다. 그 각도는 45도의 각도로 이
그림이 매우 동적이며 격정적이고 위험하다는 것을 말한다.

벽에서는 큐피트가 막 이들에게 화살을 날리기 직전이다.
그러나 그 큐피트 아래에 있는 기괴한 조각들은 표정이 사뭇 다르다.
두 사람의 포옹이나 키스 때문에 벌어진 입은 아니다.
상아조각이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표정일수도 있다.
그런데 왼쪽 조각의 표정은 지나칠 정도로 과장되어 있다.
나는 이 표정들을 사랑의 본질을 나타내는 장치라 보고 싶다.
왼쪽의 장치들을 보자. 의자에 앉은 여인은 화장을 하는 풍경이다.
그 옆의 여인은 아이를 데리고 있다. 피그말리온 뒤에는 청동으로
만든 방패가 있는데 그 방패의 중앙에 있는 표정 또한 기괴하다.
물론 이 모든 작품들은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이 만든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제롬은 이런 몇몇 장치들을 통해 사랑에 관한
그 무엇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장치들을 볼 때 사랑이 이
두 남녀처럼 아름답고 꿈꿀 수 있는 것만이 아님을 말한다. 사랑은 나
도 모르는 사이에 큐피트의 화살을 맞아, 앓고 빠지게 되는 열병이다.
이 그림의 두 남녀가 이루고 있는 자세만큼이나 묘하고 불안한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얼마나 넘어지기 위험천만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완성된 조각이라면 그렇게 사랑을 하는 조각이라면 안전한 자신의 침실에
보관을 하지 않고 아직도 미완성인 듯 작업대에 그대로 놓아주고 있다.
조각받침대에 아직도 상아가루가 너저분 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사랑
은 이렇게 미완성인 것이다. 거울을 보고 꿈만 꾸던 소녀시절을 뒤로하
고 어머니와 아내로써의 신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둘의 사랑에는
험난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경악이라고 말해야 옳을 저 두 조각의
입모양이 무엇을 경고함인가?. 그 아래의 청동방패처럼 세상의 온갖 질
시와 풍문을 굳세게 막아내야만 비로소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구는 말한다. 사랑은 구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사랑은 즉석복권처럼
긁어서 당장 그 자리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피그말리온은 말한다.
사랑은 만드는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해서 사랑은 자기 입맛에 딱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이아를 만들었다. 이 신화는 말한다. 갈라테이아는
없다고. 결코 이 현실에서 갈라테이아는 없다. 만날 수도 없고 있지도
않다. 갈라테이아는 만들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도 거저 줍는 사랑은 없다.
그렇게 당신 입에 꼭 맞는 떡이 어디 있겠는가?
 훌륭한 피그말리온과 사랑스러운 갈라테리아는 만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이해와 배려 속에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사랑은 찾기보다는 만드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예술이다.
이 신화나 이 그림이 진정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사랑은 결코 구하거나 줍거나 찾는 것이 아
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세상의 피그말리온들이여! 갈라테이아를
만들자. 사랑의 길은 길 저 끝에 그 낙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그 숨겨진 꿀이 있나니. 지금 너의 곁에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너의 피그말리온이고 너의 갈라테이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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