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이야기









가끔 꽃사진 찍으러 가는 가평 꽃무지풀무지라는 식물원 입구에


화들짝  놀랄 만한 조각품이 있다


통나무를 깎아 만든 듯한 의자 한쌍인데


들여다 볼수록  감탄을 한다


누가 만들었는지 보통  재주가 아니고


어떤 사람인지 한번 만나 보고 싶다


분명  남자이리라


50대 전후한 남자이리라


만날 수 있다면 손을 부여잡고 대포 한잔 올리고 싶다





어쩌면 저렇게도 남자와 여자


그것도 나이가 걸맞게 오십대 후반이나 육십대 중반은 됨직한 남녀의 인생을


의자 하나로 저리도 멋들어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여자는 그래 아줌마라고 부르자 늙은아줌마다


남자는 그래 아저씨라고 부르자 늙은아저씨다


늙은아줌마는 얼굴 표정이 환희에 차 있다


환희 말고는 달리 쓸 단어가 없을 정도로 기쁘다


기쁨에 고개가 뒤로 젖혀저서 턱이 하늘을 찌른다


남자는 얼굴이 죽쌍이다


팍  앞으로 고꾸라져서 짐이  무거운듯 오만상이다





의자의 태도부터가 완전 반대이다


여자는 느긋하고 배부르고 즐거워서 뒷손을 하고  앉았고


남자는 화가 나고 뭔가 불만족하고 힘든 자세로 엎드려 있다


똑같은 의자이고 같은 높이에 같은 크기의 둥근 깔판이 있지만


깔판의 놓인 위치가 두 의자가 완전히 다르다 


남자는 일단  깔판을 머리에 이고 꾸부정한 허리 중간으로 받치고 있다


여자는 일단은 무릎에 얹어 놓고  두둠한 뱃살 위로  받치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남자는 무척  힘들어 하고


여자는 힘들기보다 즐기는 듯한 자세이다





전체적인 의자 키나 크기를 보아 여자가 더 크다


의자에 앉아보면 더 학실한 차이를 느낀다


남자는 어딘가 불안하고 편하지 않고 등받이도 낮고 깔판도 얇다


여자는 어딘가 푹신하고 몸이 편안해지며 등받이도 높고 깔판도 두껍다


조각가가 이 의자 두 개를 동시에 만들었으니까 아마 부부나 애인일 것이다


어쩌면 조각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의자 조각에 쏟아부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태어났을 때 그 순간  인기가 최고 절정에 다다르며


늙어갈수록 인기가 시들어 나중에는 애물단지로 바뀌고 만다


여자는 태어났을 때에는 <살림밑천>이라고 자위하지만


늙어갈수록 인기가 늘어나 늙은아줌마가 되면 최고권위에 오른다


늙은아저씨는 어렸을 때에는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면 불알 떨어진다>고 말렸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부엌에 안들어가면  제때에 먹을 것 얻어먹지도 못한다


나이든 남자는 아내에게 세 가지를 물어서는 안된다고 개그로 현실을 배운다


<여보 어디가><여보 어디야> <여보 언제와>





여자는 늙을수록 일에서 해방이 되어 두손이 자유롭지만


남자는 늙을수록 일에서 밀려나 눈치꾸러기가 된다


여자는 늙을수록 남성호르몬이 많아져 걸걸해지고 용감해지고 배째라가 되지만


남자는 늙을수록 여성호르몬이 많이 나와 얌전해지고 수줍어지고 소극적이 된다


여자는 늙어서도 무엇을 하든지 보기 좋고 파출부로도 돈벌이를 하지만


남자는 늙어지면 무엇을 해도 초라해보이고 돈 한푼 벌기가 힘들다





남자의 욕망은 젊었을 때에는 리비도가 되고 무기가 되고 애라도 낳지만


남자의 욕망은 늙어지면 짐이 되고  부도덕이 되고 죄악을 낳는다


젊은남자는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애도 낳고 싸우기도  하고 실패도 할 수 있지만


늙은 남자는 일도 없고 돈도 없고 애도 못키우고 싸움은 피하고 실수는 죽음이다


이제 늙은아저씨는 힘들다 피곤하다 우울하다 슬프다 무섭다 때로는 죽고 싶다





늙은남자는 슬프다


눈빛을 둘 곳이 없다 - 잘못 보면 성희롱에 걸린다


말을 잘  못한다 - 말  잘못하다가는 성희롱에 걸린다


손을 조심해야 한다 - 손 잘못  다루었다가는 성희롱에 걸린다


무엇무엇이 성희롱이고 어디까지가 성희롱이냐고  잘못  물었다가는 성희롱에 걸린다


아는 것은 점점 줄어들고 기억이 가물거리고 도대체 모르는 새것은 많아지고 배울 수가 없다


모른다고 못한다고 말 했다가는 무슨 망신을 당할지 몰라서 그냥 아는 척하고 피한다


늙은아저씨가 아는 것은 옛날에는 안 그랬다는 것과 옛날이 좋았다는 것과


나도 한때는 잘 나갔었다는 것과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냥  다  모르겠다


그냥  다  무섭다


그냥  다  야속하다


그냥  다  남의 이야기만 같다


그냥  다  내 잘못만 같다


되돌릴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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