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끝맺음이 중요하거늘,
사실 그간 무지 바빴던 건 맞다. 그래도 그렇지 ㅠ
몽골 다녀온 지가 언젠데, 해가 바뀌었는데...
여태 몽골 걷記 쫑을 못내고 있었으니...
感은 식어버린 지 오래이나 사진 보며 기억을 더듬어 보자.

2018년 8월 6일
이번 트레킹의 백미인 '체체궁산'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체체궁산(Tsetsee Gun)은 울란바토르를 둘러싸고 있는 복드칸 산맥에 솟구친 봉우리로 여러 봉우리 중 가장 높다.(해발 2,256m)
산행가이드 '앗싸'는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트레킹의 시작점인 만조시르 사원까지는 두시간 정도 소요될 것"이라 했다.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으나 울퉁불퉁한 도로사정 때문에 버스가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란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드넓은 초원이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시간이 멈춘 듯 끝없이 이어진 초록풍경 속으로 버스는 내달렸다. 시멘트도로 바닥이 군데군데 깨지고 갈라진 곳이 많아 제 속도를 낼 수 없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흙길로 접어들었다. 흙길 역시 빗물에 패여 차체가 뒤뚱대며 덜컹거렸다. 일행 중 누군가가 “몽골에서 119로 전화하면 말(馬)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격하게 공감되는 우스갯소리다. 아무튼 천정에 연신 정수리를 박고, 의자바닥에 꼬리뼈를 찧는 덜컹거림을 감내해야만 했다.

초원이 끝나고 숲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 초소(?)가 눈에 들어왔다. 검문소인가 했는데 체체궁산 입장료를 징수하는 매표소다. 입장료(한국돈 3000원)를 내면 쓰레기 되가져오기 봉투를 나눠준다. 낙엽송과 잣나무 사이로 난 숲길을 따라 버스는 산 들머리인 만조시르 수도원에 멈춰섰다.

1733년에 세워진 만조시르(Manzushir) 수도원은 20개의 사원과 300명이 넘는 승려들로 몽골에서 가장 규모가 컸으나 1930년 몽골 공산주의에 의해 수도원 내 대부분의 사원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1990년 민주혁명 이후 재건되어 현재는 국가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만조시르 수도원 입구에 한글 안내판이 있는 걸로 보아 우리나라 트레커들의 발길이 잦은 모양이다.

체체궁산 들머리인 만조시르 수도원을 출발해 날머리인 '투르호라흐'까지는 17km 거리다. 가이드의 말인 즉, 7시간 걸릴 거란다. 오르내름이 부드럽고 완만하다 했는데 17km에 7시간이라? 아마도 쉬엄쉬엄, 유유자적하며 걸으란 뜻이렸다.

만조시르 수도원을 벗어나 잣나무숲속으로 들어섰다. 숲길을 걷다보면 일정 거리를 두고 나무 기둥에 노란색 페인트로 점을 찍어 놓고 숫자를 적어 놓았다. 등로 표시다. 그것을 놓치지만 않으면 길 잃을 염려는 없겠다.

간간이 나무벤치 쉼터가 있어 세 부부팀(광주에서 온)은 걷다 쉬다를 거듭했다. 가이드를 앞서 걷기도 뭐해, 늘보 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흰색 바탕에 빨간 테두리와 가운데 사선이 그어진 표지판이 곧잘 눈에 띈다. 우리의 도로교통표지판 중 금지 표지판을 닮았다. 전달력은 강하나 자연 경관과는 따로 논다. 인간에게 산림을 훼손하지 말라는 도끼 그림은 알겠는데 사슴 통행 금지는 도통 이해불가다. 몽골의 사슴은 표지판을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또 몰라도...

그렇게 놀며 쉬며 두어시간 숲속길을 타박타박 걸었다. 다채로운 풍경에 흠뻑 빠져 걷다보니 여기가 속세인지, 선경인지 헷갈린다. 이 또한 체체궁산 트레킹의 묘미다. 드디어 숲 사이로 정상부의 암릉이 살포시 모습을 드러냈다. 구상나무 군락지를 벗어나 정상이 가까워지자 나무들도 키를 낮췄다. 정상부와 맞닿은 하늘빛이 수채물감처럼 맑고 곱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초원길엔 물이 흥건했다. 도랑물인가 했는데 아니다. 일대가 온통 고원 습지대다.

정상이 코앞에 바짝 다가섰다. 너른 정상부에 거대한 돌이 마치 짚가리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 돌더미에는 오색천이 칭칭 감겨 펄럭인다. 타르초(Tharchog)다. 우리의 성황당에 걸린 오방색 천과 흡사하다. 흩날리는 타르초를 보며 괜시리 마음을 여미게 되는 건 또 왜일까?

드디어 해발 2,256m의 체체궁산 정상에 섰다. 단순 해발 고도로만 본다면 소생이 걸어 오른 높이 중 최고점이다. 몇해 전 오른 2,236m의 일본 초카이산 보다 20m가 더 높다. 하지만 울란바토르시의 해발고도가 1,350m이니 실제 걸어서 오른 높이는 북한산 정도나 될까? 그래서 누구나 쉽게 접산해 고원의 청정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산 꼭대기에 올라앉은 거대 돌더미는 마치 검독수리가 부리를 내밀며 큰 날개를 펼치고 울란바토르를 향해 날아오르는 형상이다. 설치미술가의 조각 작품을 떠올렸다. 독수리 날개를 딛고 서서 사방을 조망했다. 광대한 초원 저너머로 울란바토르 시내가 가물가물 눈에 들어왔다. 몽골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 여기는 체체궁산은, 이렇게 감싸 안듯 울란바토르를 품고 있다.
햇볕을 피해 돌더미 아래 쉼터에 좌정하고 준비해 온 도시락을 열었다. 불고기에 김치, 밑반찬 그리고 국물까지 갖췄다. 몽골 하늘 아래서 만난 한식 도시락이다. 여기에 이슬?을 더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위 사진에서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 중 왼쪽(M~)은 올라 온 방향, 오른쪽(T~)이 날머리인 '투르호라흐' 방향이다.
올라 온 길이 7km, 내려 갈 길이 10km라 했다. 순간 지리산 뱀사골 계곡이 떠올랐다. 화개재에서 반선마을로 이어지는 계곡길이 9km다. 계곡이 아름다운데도 불구, 지루했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하산 내내 숲내음 그윽한 산길과 야생화 지천인 초원길이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숲 속 공기는 더 없이 청량했고 시선 닿는 초원의 구릉은 한결같이 ‘윈도우 XP’의 초기 바탕화면에서 본 그림의 연속이었다.

날머리를 5km 정도 남겨놓고 일행들을 따돌렸다(?) 걷다 쉬다를 반복하는 일행을 앞질러 평소 걸음 속도로 유지했다. 물론 가이드에게 사인을 주었다. 걷다가 길이 헷갈리면 페인트 표시를 찾으며 진행하라 했다. 한참을 그렇게 걷는데 사람 하나 만날 수 없었다. 제대로 길을 찾아 걷고 있나?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깊은 숲길과 드넓은 초원의 길도 끝은 있었다. 드디어 대기 중인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트레킹 자료에는 '17km에 7시간'으로 나와 있었지만 실제 발품을 팔아보니 '15.4km에 4시간 40분'으로 기록됐다.

홀로 미리 도착한 터라 버스 주위를 맴돌다 풀숲을 손으로 헤치고 바위에 걸터앉았다.  순간 바늘로 찌르듯 손바닥이 전체가 따가웠다. 그 통증은 좀체 잦아들지 않았다. 한참 후 도착한 가이드 '앗싸'는 바위 옆 풀을 가리키며  '할가이'라는 독초라고 했다. "통증이 무척 심하지만 30분 쯤 지나면 씻은 듯 사라지니 걱정말라"고 했다.
체체궁산 트레킹의 대미를 '할가이'가 격하게 장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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