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재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제목만 보면 복지문제와 고령화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같지만 내용은 예상 밖이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주인공)와 그가 쫓는 돈 가방을 든 사나이, 이 둘을 뒤쫓는 늙은 보안관 사이에 벌어지는 우여곡절을 그린 범죄스릴러 영화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주인공 '안톤 쉬거'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이 미소가 얼마나 섬뜩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관람객이 꼽는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이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편의점 주인은 계산을 하는 주인공에게 지나온 곳의 날씨를 묻는다. 그러자 주인공은 살벌한 낯빛을 하며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인지” 되묻는다. 분위기가 범상치 않은 주인공의 캐릭터에 당황한 주인은 방어적으로 반응하며 상황을 모면하려 애쓰지만 주인공은 마치 먹잇감을 포착한 뱀이 숨통을 조이듯 편의점 주인의 말꼬리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이 편의점 주인을 살해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관객은 알 수 있다. 단지 거슬리는 말을 한마디 했다는 이유로.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때리고 부수고 하는 강렬한 자극 없이도 관객에게 서슬퍼런 긴장감을 선사한다. 문제는 바로 주인공과 편의점 주인의 대화 속에 드러난 세대 간의 시각차다. 세계가 전복되고 있음을 약 5분간의 대화에서 함축하고 있다. 주인공은 ‘신세대(Z세대)’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해석할 수 있다. 기성세대와 선을 그으며 자신의 주관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그래서 단지 친교적인 의미로 건넨, “자네가 지나온 곳의 날씨는 어떠냐?”란 말에 대뜸 “네가 무슨 상관이냐”로 답하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바로 늙은 보안관의 모습에서 은유된 것이다. 은퇴가 가까운 보안관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주인공의 뒤를 쫓지만 매번 허탕을 치며 단 한 번도 주인공을 맞닥뜨리지 못한다. 기성세대와 그 사고는 새로운 세대를 절대로 쫓을 수가 없다는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90년생, ‘신인류’의 등장

90년생이 온다》는 아예 다른 인류가 출현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주제의식과 결을 같이 한다.  90년생 이후의 사고방식은 기성세대와 완전히 달라서, 기성세대에게는 도통 이해가 안 되며, 때론 무섭고, 소위 ‘개념’ 없고, 이기적이고, 무례하게 보인다. 양쪽의 의견을 공히 들어봐야 하겠지만, Z세대를 이해해야 할 책무는 기성세대에게 있다. 그들에게 ‘꼰대’ 소릴 듣지 않으려면.
90년생은 이제 조직에서는 신입사원, 시장에서는 트렌드를 이끄는 주요 소비자다. 이 책에 담긴 여러 통계와 사례, 인터뷰에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담겨 있다. 많은 90년생은 알아듣기 힘든 줄임말을 남발하고, 어설프고 맥락도 없는 이야기에 열광하며, 회사와 제품에는 솔직함을 요구하고, 조직의 구성원으로서든 소비자로서든 호구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꼰대질’을 하는 기성세대나 자신을 ‘호갱’으로 대하는 기업을 외면한다.

《90년생이 온다》 │ 임홍택 │ 336쪽 │ 14,000원

책을 읽으며 일터에서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 ;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며, 조직에 대한 ‘로열티’가 낮고, 남들에게 ‘있어 보이는 일’을 하려는 90년생의 태도를 분석하는 대목에선, 그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부모세대가 전수한 삶에 대한 지침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희들 때문에 살지, 자식들 아니었으면….”
“내가 그래도 남들 보기에 밉보이지 않게 너희들을 키웠다.”
“남들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게 살아라.”
“사회생활은 실력이 다가 다니다. 사람 잘 사귀고, 눈치껏 해야 한다.”

우리 세대치고, 부모로부터 이런 말을 한 번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성세대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 자식이 아니면 하지 않았을(혹은 이미 끝냈을) 결혼생활이며, 돈벌이란 무엇을 하든 역시 녹록치 않다. 또, 사회생활은 애초 공정하지 않으며,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은 ‘실력’보다 사람(인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질’이란 항상 ‘남들’을 가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며, 남들보다 뛰어나면 꽤 괜찮은 삶을 사는 것이다.
90년생들이 부모세대로부터 받은 지침이 이와 같이 부정적이다. 삶에 대한 소회가 하나같이 웬만하면 고생은 되도록 피하고, 적당하게 눈치껏 살아가며,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한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에 있다. 이런 삶을 보고 배운 90년생이 스스로 ‘비전’을 포기하며, 안정을 직업선택의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삼고, 남들보다 있어 보이는 데 초점을 두는, 그래서 하루라도 빠르게 경제적•사회적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생각을 갖는 건 당연하다. 개인주의와 경쟁이 심화되는 이유다. 이렇게 생각하면, 90년생은 완전히 새로운 인류가 아니다. 기성세대가 느끼는 삶의 실패감에 대한 메아리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책을 소비하는 방법

올해 서점가를 들썩이게 했던 트랜드에도 90년생의 소비성향은 드러난다. ‘에세이 돌풍, 캐릭터 유행, 페미니즘’ 등의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는 흐름이 눈에 띄었다. 어떤 편집자들은 “이런(사실은 ‘이 따위’) 책들이 왜 나가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탐탁지 않게 보는 이들은 ‘표지 팔이’, ‘SNS 장사’ 등 과격한 표현으로 현상을 설명하기도 했다.
90년생의 독서는 ‘X세대’와 다르다. 우선 책을 고를 때 제목에서 충분한 ‘임팩트’를 주지 못하면 그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거기에 쌈박한 디자인도 들어가야 한다. “그건 예전에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할지도 모르겠지만, 양상이 다르다. ‘있어빌리티(있어보인다 + ability)’가 중요한 그들에게 선택받으려면 팬시 상품마냥 책을 디자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에는 책 내용을 암시할 만한 간단한 그림이나 사진이면 충분했다. 책을 너무 화려하게 만들면 오히려 “표지 팔이 한다”는 야단을 되레 독자들에게 듣기도 했다.
상품으로서의 책의 생애주기도 짧게 계산해야 한다. 음반시장에서 ‘명곡’을 찾기 어려워졌듯, 오래도록 사랑 받을 ‘명작’을 만들기는 이미 어렵다. 책의 생애주기가 과거에 비해 짧아진 것이다. 《90년생이 온다》도 좋은 예다. 트렌드를 빠르게 읽고 그에 대한 보고서의 형태로 출간된 책이다. 시대의 키워드를 영민하게, 적절히 취합하면서도 얕지 않은 통찰력을 제공한 뛰어난 기획이다. 하지만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90년생이 기성세대가 된다면 이 책은 사실상 생명을 다한 것이 된다. 작가가 말하는 분류법에 따라 세대구분이 10년 단위로 일어난다면, 약 10년 뒤에는 《00년생이 온다》는 책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1~2년만 지나도 책이 쓸모없어질 것이라고 본다. 그 시간 안에 일어날 변화가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구식’으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