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비창  4악장

 비 오는 날의 넋두리

 ᄇ
 비가  온다
 오는 비는 오더라도
 한닷 새만 왔으면 하던 사람이 있었지
 가야만 하는 커다란 틀을 따라 가고 있는 비
 저도 제가 가고 싶어 가겠냐만은
 떠나왔던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 거
 


 ᄆ
 물
 그 돌고 도는
 숙명의 자연 섭리 앞에서
 물은 아무런 몸짓 하나 없었다
 햇볕에 때론 바람에 늘 그렇게 흐름에 따라
 몸을 바꾸고 이름을 바꾸고
 때로는 흔적도 사라졌다가
 다시 언제 그랬나는 듯이
 도도히 나타나는 물
 그 흐름의 하나인
 저 비
 ᄇ
 


 ᄉ
 술
 마음은 벌써
 몇병째 마시지만
 거듭된 술로 속이 상해
 몸은 찬물만 벌컥대면서 술을 마신다
 술 아는 사람은 알아서 반대
 모르는 사람은 왜 마시느냐 반대하지만
 세상 사는 일이 어디 제 마음대로 되던가
 제 마음대로 되려고 안간힘을 써 볼수룩
 오히려 뒤뒤 꼬이고
 여린 마음 다잡지 못하고
 대추나무 연 걸리듯
 여기 저기 미친년 속곳 찢어지듯 찢긴 마음들만 널린다
 

 

 ㄲ
 꿈
 나도 한때는
 꿈을 먹고 살았지
 가장 교과서다운 자세로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대로 살리라 하면서
 고운 꿈을 키웠지
 그 꿈 덕분에 지금까지 이러고 산다고는 말 못해도
 그 꿈 이제는 깰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꿈이 꿈이란 걸 알면서도 깨어나지 못하는데
 과연 지금 내가 꿈인지 아닌지가 도무지 모르겠다
 한때는 꿈이면 어떻고 꿈 아니면 어떠랴
 꿈이건 생시이건 열심히 살자 했지만
 꿈이란 걸 알면 어찌 깨지 않으랴
 쨍쨍한 내 정신 하나로도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꾸지도 못할 꿈을 꾼 죄처럼
 또 꿈에게 짓눌리는구만
 


 허공 중에서 비는 소리가 없다
 아무리 기뻐도 슬퍼도 허공을 가르지르며
 비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전기줄에 유리창에 젖은 머리칼에
 도둑고양이 슬픈 잔등에 지친 아스팔트에
 제 어머니인 물 위에 떨어질 때
 비는 비로소 소리를 낸다
 제 소리도 없이 제각각의 소리를 낸다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눈물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누가 비의 소리라 하랴
 그건 유리창소리 머리칼소리 물소리 눈물소리인 것을
 만약 그 소리가 빗소리라면
 어떻게 그런 수많은 소리를 낼수 있으랴
 허공 중에 내리는 비는 소리가 없다
 아니 낼 수가 없다
 무슨 소리를 내랴
 아파도 아파할 수 없고 슬퍼도 슬프다 할 수 없는
 시늉을 내는 것만도 십계의 계율을 어기는
 이  천박한 세상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내 눈물에도 소리가 없음을 또 한번 깨닫는다
 


 길
 가야만 하지
 비가 내리듯 나는 그 길을 가야만 하지
 안 갈 수 없는 운명 속에서 가는 것을 탓하지는 않으리
 가리라 내 가리라
 갈 곳도 모르고 가는 방법도 모른 채
 우리 모두들 잘 가고 있다
 알에서 깬 거북은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하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본능은 이미 상황에 마비당하고
 교육은 벌써 장님이 되었는데
 어디로 가야만 하나
 길을 알아야 길을 가지
 사방팔방 남들을 쫓아 허둥지둥 가기는 잘 간다마는
 갈 곳 모르듯 가는 방법도 모르겠구나
 살아온 방법이 옳은지도 모르고
 살아갈 방법도 막막하기는 매한가지이다
 또 그냥 눈치나 보면서
 법을 교묘히 피하고 도덕을 손가락질 하면서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위험한 도박을 해야 한다
 온세상이 다 그러는데 뭐 너만 중뿔났냐 라고 자위를 하면서
 그렇게 마셔댄 술은 또 얼마였던가
 내 길을 찾고 알고 가고 싶듯이
 나도 내 소리를 내고 싶다
 내 길을 내 소리를 내면서 살고 싶다만
 참 꿈도 모르면서 꿈도 깨지 못하면서
 또 다른 꿈을 꾸는 나는 과연
 꿈꾸는 자인가  꿈 깨려는 자인가 꿈꾸지 못하는 자인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해야할 일은
 오로지 사랑하는 일이라고 누가 그랬나 내가 그랬나
 사랑 속에서 태어나 사랑 속에서 자랐지만
 사랑을 꿈꾸고 숱하게 사랑을 했노라고 생각하지만
 살아갈수록 그 사랑은 모르는 것이로다
 눈먼 자만이 참사랑을 할 수 있다고 내가 그랬나
 미친 사랑만이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그것도 내가 그랬나
 이루지 못한 사랑만이 영원한 사랑이라고도 했던 거 같은데
 할수록 어렵고 살수록 못할 것이 사랑인가보다
 한번 더 생각해보면  무엇이 사랑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사랑의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열여섯살과 아흔살  그 사랑이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고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고
 자꾸 변해가는 내 사랑의 방법과 대하는 마음도
 성숙되는 건지   잘못되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존재가 아니라 당위라고 한때는 기염을 토했지만
 사랑은 남자의 욕망과 여자의 환상이 빚어내는 이중주라고도 했지만
 드라마보다 더 먼저 과연 우리가 사랑했을까 라고도 울부짖었지만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르겠다. 과연 사랑이 무엇인가.
 


 차암
 지금 내 나이에 사랑은 뭐 말라비틀어진 것인가
 지금 내 처지에 딴 사랑을 꿈꿀 수 있는 것인가
 먹고 살기도 벅찬 세상에 배부른 소리인가
 사랑? 그건 계산하고 따지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글 못쓰는 사람이 글 쓰는 방법이 평론이라고
 사랑을 못하는 사람이 사랑타령을 하는 것인가
 사랑의 화신인가  희대의 바람꾼인가  철부지 몽상가인가
 한 가지 살면서 느끼는 것은
 젊었을 때에는 그런 거 안 따졌는데
 나이가 들수록 내 길을 한번 되짚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철이 들었다고 봐야 하나  갈 길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가
 분명한 것은 비오는 날 사랑하는 것보다
 비오는 날 사랑을 되짚어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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