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나를 술마시게 한다
어서 오시게

안주 하나 고르세 맘에 드는 걸루

마땅한 게 없나?

그럼 이건 어떤가
이 세상은 나를 술마시게 한다
그것두 맘에 안들어?

그럼 이건?
이 세상은 나를 술마시게 한다
허허 그럼 이건?
이 세상은 나를 술마시게 한다
그러면 우리 그냥 강가에 퍼질러 앉아

깡소주나 마심세

저 강물을 안주 삼고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권주가 삼아 한잔 함세
이 세상은 나를 술마시게 한다
빈 속에 소주 한 잔

뱃속이 진저리를 친다

여인의 마음처럼 소주맛

그때 그때 다 다르다

두 잔 넘어가기는 쉬워졌는데

왈칵 뱃속이 뒤집어지면서

생목이 자꾸 오른다

무어라 그리 넘기지 못하고



강가에서 술을 마시며

동아줄에 매달려 춤을 추는

노젖는 배 수십 척을 본다

도리없이 물은 출렁이는데

덩달아 배는 흔들릴 수밖에

한때는 즐거운 연인을 싣고

따라서 까르르 대며 강물을 거슬러 올랐고

또 한때는 외로운 사람을 싣고

함께 훌쩍이며 물보라를 흘렸는데

그건 잠시다

배에게 그건 잠시이다

긴 시간 저리도 흔들리며 기다려야 한다



세 잔을 마셨다

목구멍도 뱃속도 편안하다

한바탕 쿠테타가 일어난 뒤는

언제나 조용한 것이 세상이다

또 한 잔을 마신다

배가 흔들리는 것이 파도 탓이랴

파도가 치는 게 바람 탓이랴

바람이 부는 게 바람 탓이랴

모두들 남의 탓으로 돌리면 편하랴

바람조차도 서늘한 곳에서 더운 곳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태양의 뜻인걸



또 한 잔을 마신다

목구멍도 뱃속도 아무 느낌이 없다

2프로가 아닌 좀 다른 액체라는 것뿐

술이 매 잔 똑같은 맛이라면

누가 술을 이리 좋아했을까

역시 술은 사랑의 마음을 닮았다

다만 사랑은 잔이 거듭할수록 쓰지만

술은 잔이 거듭할수록 달콤하다는 것





또 한 잔을 마신다

그래 습관이다

사랑은 편안한 습관과

새로운 욕망 사이의 시이소오이다

한 잔 또 한 잔 아무 거침없는 사랑 속에

길들여져 가는 습관과

올라만 갈 줄 아는 욕망 사이의 숨바꼭질

몇 잔을 그렇게 마셨다

그리고 한 병을 더 마셨고

두 병이 넘으니 계산이 의미가 없다



이미 깊이 길들여진 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세 병을 마시고 헤어졌던가?

아니지 세 병이 넘으니

헤어지고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게

무엇을 얼마나 더 마셨는지가

의미가 없다

그래서 기억도 안 하기로 했다

어차피 술이 깨면 아무 소용도 없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