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정 3일 차인 8월 5일, 트레킹 없이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일정이다.
06시에 기상해 게르 밖으로 나와 날씨를 살폈다. 옷깃을 여며야 할 만큼 제법 쌀쌀하다. 하늘엔 먹구름이 낮게 드리워 있다. 간간이 빗방울도 떨어진다. 몽골인들은 비를 몹시 좋아 한단다. 강수량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몽골에서 '비'는 곧 '행운'이라고 한다.

공동 화장실과 세면장은 게르 밖 멀찍이에 있다. 공동시설이라 사람들 몰리기 전에 후다닥 씻고서 뒷산 중턱 전망대에 올라 이른 아침 초원의 풍경에 빠져들었다. 잠시 목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행복지수가 상승하는 기분이다. 슬로우라이프가 답인데... 게르에서의 조식은 계란후라이와 소시지 그리고 샌드위치다.
09시, 게르 숙박 체험을 마치고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캐리어는 고맙게도 게르촌 직원들이 버스까지 끌고와 실어주었다. 그들은 우리가 탄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 흔들어 주었다. 동구밖까지 나가 예를 갖춰 손님을 배웅하던 우리네 시골 모습이 떠올랐다.

20여분 비포장길을 달려 거북바위로 이동했다. 테를지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거북바위는 몽골의 주요 랜드마크 중 하나여서 몽골 여행사진에 감초처럼 등장한다.
어마무시한 거북바위가 엉거츠산을 배경으로 미끈한 자태를 드러냈다. 혹시 중생대 바다 거북의 화석은 아닐까? 압도적 위용에 괜스레 내 몸뚱어리가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아리야발 사원. 다시 뒤뚱거리는 버스에 올라 20여 분을 달려 엉거츠산 밑에 닿았다.
저 건너 산비탈에 사원이 눈에 들어온다. 라마 불교사원이라는 아리야발(Aryapala) 사원으로 들어섰다. EBS 여행정보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에 소개되어서일까, 우리나라 분들도 곧잘 눈에 띈다.
몽골어와 영어로 불교의 가르침을 빼곡히 적어놓은 팻말이 도열해 있는 완만한 오름길을 따라 오르면 사원이 자리한 산 중턱에 이르게 된다. 많았던 사원들이 사라졌다. 러시아 군정기 때 불교 탄압으로 사라졌다. 겨우 살아 남은 이 사원은 수리를 거쳐 1988년에 제 모습을 다시 찾았다.
본당 옆 마니차를 돌리며 한바퀴 걸었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리는 것이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한다. '옴마니반메훔'을 외며 이국 사원에서 소원을 빌었다.
사원에서 내려오는 길, 야생화가 지천이다. 이제 몽골 초원의 전설, 징기스칸을 만나러 간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칸이 되었다." 13세기에 중앙아시아를 평정하고 남러시아까지 내달리며 광야를 평정한 징기스칸이 남긴 말이다. 다분히 중독성 있는 노래, 징~징~ 징기스칸을 흥얼거리는 사이, 버스는 징기스칸 기념관이 있는 광장에 멈춰섰다. 울란바토르에서 54km 떨어진 드넓은 초원에 덩그러니 세워진 거대한 은빛 징기스칸 기마상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40미터 높이의 기마상은 10미터의 원형 건물 위에 올라선 모습이다.
기념관으로 들어가 좁은 계단을 비집고 올라 말 정수리 전망대에 섰다. 사람이 많아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러시아워 때 9호선 전철 안 모습과 흡사하다. 겨우 인증샷 하나 건지고서 탈출(?) 했다.

징기스칸 기념관을 나오니 정오가 훌쩍 넘었다. '몽골도 식후경'이다. 가이드는 징기스칸 기마상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흉노족 후예가 운영한다는 레스토랑으로 우릴 안내했다. 레스토랑 뒤 산비탈에 커다랗게 쓰여진 흰 글씨(XYHHY TYP)는 '흉노캠프'라는 뜻이란다. 흉노는 몽골초원을 누빈 바람의 제국이다. 유라시아 대륙 일대를 지배했던 초원 유목민들이다. 호박죽에 소안심 스테이크를 놓고 여덟 일행이 마주 앉았다.
지리학을 전공했다는 교장쌤의 몽골초원 지형 설명에 모두가 잠시 학생들이 되기도 했다. 그 교장쌤은 일행들을 상대로 여행 소회를 인터뷰하는 여정을 열심히 영상에 담는 정성도 보이기도 했다.
다음 일정은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간단사원(Gandan Monastery) 둘러보기다. 드넓은 초원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서자, 이곳도 차량 정체가 장난 아니다. 대초원의 여유로움은 온데간데 없고 교차로에는 차량이 뒤엉켜 있어 신호를 두어번 받아야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다. 도로에 올라앉은 차량들은 일본산과 한국산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대부분이 중고차를 들여 온 것이란다.
사원 관광에 앞서 몇몇 일행이 '캐시미어' 쇼핑을 청해 막간을 이용, 고비 캐시미어 매장에 차를 멈췄다. 매장 안은 한국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다. 면세점이 아닌데도 불구, 캐시미어 제품을 담은 쇼핑백이 빵빵했다. 캐시미어 사랑이 이랬었나? 한결같이 득템이라도 한듯 표정들이 밝다.(그나저나 이번 트레킹 스캐줄에는 쇼핑이 없었는데... 일행들이 요청한 것이라 가이드를 탓할 일은 아니다)

 

나는 제품 쇼핑 보다는 캐시미어 핸드메이드에 관심이 가 수작업 공장안을 기웃거렸다.

간단사원은 라마 불교 사원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러시아 지배를 받던 몽골은 1930년 경 스탈린의 종교탄압으로 무수한 사원이 파괴되었다. 오전에 들렀던 아리야발 사원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살아남은 몇 안되는 불교사원 중 하나다.
사원을 관리하는 재정이 부족한지는 몰라도 관리가 너무나 허술하다. 바닥 보도블럭 사이로 풀이 웃자라고 지붕 기왓장 위는 아예 풀밭이다. 쓰레기도 곳곳에 나뒹군다. 길이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인데, 안타깝다. 가이드 ‘앗싸’가 몽골 전통 공연을 보기 위해 미리 극장 앞에 가서 줄을 서야 한다며 서둘렀다.

공연 시작 40분 전에 도착했는데도 공연장 앞은 이미 인파로 가득했다. 긴 줄의 끝에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입장 순서대로 층계로 된 관람석에 앉았다. 더 이상 빈 자리가 없는데도 계속 들어와 무대 앞 맨바닥까지 들어찼다. 몇몇 관객은 극장 측의 무대책에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공연은 예정대로 시작됐다.

막이 오르자, 전통복장을 한 듬직한 체형의 몽골 남성이 등장해 오묘한 목소리로 가창했다. 귀를 의심했다. 사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일까 싶었다. 바로 초 고음과 저음의 두 목소리를 한번에 내며 다양한 화음을 연출하는 ‘흐미’라는 몽골족의 매우 독특한 가창법이다.
이어진 아크로바틱 공연은 손에 땀을 쥐게 했고 몽골 전통악기 연주와 민속춤이 한마당 흥겹게 펼쳐졌다.

공연장을 나와 몽골리안 레스토랑, ‘Modern nomads’로 이동했다.
야채 셀러드와 닭고기 스프, 양고기 갈비, 푹 찐 당근과 감자, 오이가 식탁에 가득 올랐다. 몽골 전통음식 ‘허르헉’이다. 비주얼은 뭐해 보여도 주(?)를 부르는 극강의 맛이었으니, 적어도 내겐...

일행들과 ‘위하여~’ 몇 번에, 얼굴도 가슴도 불콰해졌다. 레스토랑을 나와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는 수하바타르 광장을 찾았다.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넓다는 광장이다. 국회의사당과 징기스칸 동상이 있어 국회의사당 광장 또는 징기스칸 광장으로도 불린단다. 광장 벤치에 앉아 서쪽 하늘을 우러러 본다. 해질녘 하늘빛이 곱디 곱다. 하루종일 낮게 드리우던 먹구름이 걷히며 노을빛이 번지고 있다.
길거리 화가가 벤치로 다가와 직접 그렸다는 여러 장의 그림을 펼쳐 놓았다.  어릴 적 수학여행 가면 관광지에서 그림엽서 사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 그림 한 점을 냉큼 집어 들었다. 징기스칸이 마상에서 활을 쏘며 달리는 역동적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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