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다. 예전에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나 선생님들의 가르침 중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회개’였다.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받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기도를 많이 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무슨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벌레만도 못한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뉘우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반성은 나를 더 성장시킨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방법으로 진행되지 않고, 정도를 지나치면 좋은 영향보다는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만 낳기도 한다. 내가 대학교 때 같이 성경공부를 하던 어떤 모임의 사람들은 매주 모여서 자신이 어떠한 죄를 지었는지에 대해 회개했다. 자신의 잘못이 생각나서 그것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매주 시간을 정해놓고 자신이 어떠한 잘못을 했는지 찾고 또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잘못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보기에는 전혀 죄도 아니고 잘못도 아닌 것을 회개하며 눈물 흘리고 자신을 벌레만도 못한 놈이라고 저주하곤 했다. 예를 들어, 자위행위를 했다는 것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을 인간쓰레기 취급하는 사람도 많았다. 자신을 인간쓰레기 취급하는 사람이 미래를 계획하고 자신감 있게 노력하며 다른 사람들과 신뢰를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교훈은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디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게 치열하게 고통을 참아야 한다. 그래야 값진 성공이 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힘들고 고통스럽게 수행해야 죽어서 천당이나 극락에 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달콤한 성공을 맛보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 고통을 참는 것은 아니다. 같은 노력을 해도, 고통을 참으며 하는 사람이 있고 그 과정을 즐겁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의무감에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어서 즐겁고 재미있게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해서 마음의 동기가 생겨서 몰입할 때, 창의성도 생기고 성과도 생긴다. 이런 선순환의 구조에 사람들은 더 주목한다. 그렇게 하면, 즐겁게 과정을 즐기면서 결과적으로 성공하고 행복한 것이 동시에 얻어지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참는 것은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것이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싫다. 무엇이든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있게 무엇인가를 해야 창의성도 생기고 에너지도 생기고 성과도 생긴다. 교회를 다니는 것도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어야 하고, 참선이나 자신을 수양하는 일도 재미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개발하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과정도 재미있고 즐거워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도 이룰 수 있다. 고통을 꾹 참고 견디면서 정해진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는 성과도 성취도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것에는 한쪽 방향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해 ‘무섭고 두려운 분’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인자하고 선하신 분’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두려운 존재’ 이기도 하고, ‘인자한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시각도 두 가지가 있다. 어떤 목사님은 “벌레만도 못한 죄인인 우리를 용서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도 하고, 어떤 목사님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는 보석보다 귀한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벌레만도 못한 쓰레기’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가 되기도 한다. 둘 중 하나가 우리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갖고 있다.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쓰레기’고 어떤 사람은 ‘귀한 자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벌레만도 못한 모습과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보물의 모습을 둘 다 가지고 있다. 중요한 건 벌레만도 못한 나의 모습을 보느냐,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나의 모습을 보느냐다. ‘두렵고 무서운’ 모습으로 하나님을 보느냐, ‘선하고 인자하신’ 모습으로 하나님을 보느냐의 차이처럼 말이다.

 

 

두려움에 떨며 회개하기 위해 교회에 가는 사람도 있고, 즐겁고 재미있게 영광을 드러내려 교회에 가는 사람이 있다. 죄인 된 삶에 빠져 살며 구원받기 위해 교회에 가는 사람이 있고, 더 많은 사람들과 즐겁고 재미있는 인생을 공유하기 위해 교회에 가는 사람이 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두려움에 떨며 고통을 참고 인내하며 살기를 바라시지는 않을 거 같다. 즐겁고 재미있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내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큰 재미와 행복을 내가 느끼며 살기를 바라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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