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시간에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언제 들어오냐, 일찍 들어와라, 자기들이 잠자기 전에 들어와서 같이 TV 보자는 것이 아이들과 통화 내용이다. 그런데, 우리 아들과 딸의 전화 대화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실제 통화 내용은 이렇다.

 

아들: 아빠, 어디야? 언제와?

나: 어, 일찍 갈게. 좀 이따 출발할 거야

아들: 네. 일찍 오세요.

 

딸: 아빠, 어디야? 언제와?

나: 어, 일찍 갈게. 좀 이따 출발할 거야.

딸: 몇 시에 출발할 건데? 집에는 몇 시쯤 도착해?

나: 어, 아무튼 좀 이따 출발할 거야. 조금만 이따.

딸: 그러니까, 몇 분 있다가 출발하는데. 거기서 집에 까지는 얼마나 걸리는데.

 

 

아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아서 생각보다 늦게 집에 오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딸하고 전화를 하면 전화를 끊을 때쯤에 딸은 꼭 숫자로 정확한 시간을 자기가 정해준다. 이렇게 말이다.

“아빠, 9시 20분까지는 꼭 오세요”

 

이렇게 딸이 정해준 시간을 꼭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는 큰 부담이 자리잡는다. 그리고, 실제 9시 20분이 가까워지면 계속 머릿속으로 집에 갈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이든 구체적이고 숫자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강력한 힘이 있다. 사실, 숫자를 사용하여 커뮤니케이션 하는 우리 딸은 수학을 매우 싫어하고 못한다. 반대로 우리 아들은 수학을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한다. 수학을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숫자를 이용하고 활용하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학실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숫자를 활용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잘 얻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숫자를 활용하여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갖는다. 우리가 잘 아는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을 생각해보자. “세상에는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의 생활 수준은 지구 전체로 보면 너무나 감사할 일입니다” 이런 말을 아무리 하는 것보다, “지금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20명은 영양실조 상태이고, 1명은 굶어 죽고 있습니다. 그런데, 15명은 비만입니다. 당신은 15명 비만에 속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의 생활도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것에 빠져 있다면 구체화하고 숫자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돼야지”보다는 구체적으로 금년 목표, 3년 후의 모습, 5년 후의 자신에 대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보고, 숫자로 목표나 계획을 써보는 것이 좋다. 숫자를 종이에 써보며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보는 것은 강력한 힘을 갖는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에 썼던 숫자를 달성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며 구체적인 숫자 쓰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숫자로 써보라. 외제차를 타고 싶고 넓은 집에 살고 싶다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BMW 미니를 갖고 싶고 우리동네에 있는 40평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것이 더 좋은 목표다. 불쌍한 사람을 돕고 싶다가 아니라, ‘내가 금년에는 소년소녀 가장 1명, 독거 노인 1명에게 매달 각각 5만원씩을 후원하겠다’는 계획이 훨씬 더 현명한 계획이다.

 

예전에 친구들과 논문을 같이 나눠서 읽고 서로 발표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한 친구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가리키며 “내가 이것 하나만 3시간 생각했는데, 모르겠어. 잘 이해가 안 되더라.”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열심히 발표 준비를 했는데, 이 부분은 너무 어려워서 발표준비를 못했어’라는 말보다 구체적으로 “내가 3시간 동안 생각했는데”라고 숫자를 사용하여 말하는 거다. 그렇게 말했을 때 다른 친구들에게 더 많이 공감을 얻었던 것 같다. 많은 일에 구체적으로 측정 가능하고 확인 가능하게 숫자를 써보자. 숫자로 생각하고 숫자로 말해보자. 숫자는 강력한 힘이 있다.

 

 

박종하

mathia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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