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고 진지하다는 단어와 가볍고 감각적이라는 단어 중 창의성과 더 어울리는 것은 무엇일까? 느낌으로는 가볍고 감각적인 것이 더 창의성에 가까운 거 같다. 혹시,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신중함과 진지함을 선택할 수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가볍고 감각적이라는 말이 창의성과 더 잘 어울린다.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경험했지만, 2002년의 월드컵을 제외하면 항상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한국 축구는 골 결정력이 낮다는 지적을 항상 받아왔다. 한국 축구 선수들의 골 결정력이 낮은 이유를 다음 둘 중 하나에서 찾는다면 어느 쪽이 더 맞는 분석일까?

1.       선수들이 신중하게 플레이 하지 않아서

2.       선수들이 지나치게 신중하게 플레이 하기 때문에

 

 

축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가장 수준 높은 축구를 볼 수 있는 유럽리그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박지성 선수가 영국의 축구리그인 EPL에서 뛰면서 국내 축구팬들은 유럽 축구에 대한 뉴스나 실제 경기를 더 자주 접하게 됐다.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유럽 축구는 엄청난 시장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 선수와 같이 활동하여 우리에게도 익숙한 호날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팀을 옮기며 이적료로 8000만 파운드(우리 돈으로 대략 1,600억 원)에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박지성 선수를 비슷해 EPL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은 1주에 우리 돈으로 1억 원 이상의 고액연봉을 받는다. 그만한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시장이라는 이야기다. 그럼, 유럽 축구와 한국 축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축구 영웅, 박지성)
 



아마 스피드가 아닐까?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를 경험한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스피드에 적응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뽑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유럽 축구에서는 신중하게 경기하며 공을 소유하는 시간을 늘리면 어김없이 상대가 볼을 낚아채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감각적으로 몸이 시키는 데로 움직이며 플레이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신중함보다는 즉흥적이고 감각적으로 플레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다.

 

 

신중함은 현대 축구에서 미덕이 아니다. 생각의 스피드가 경기 스피드로 이어진다. 빠른 판단을 넘어 감각적인 판단만이 빠른 축구를 가능하게 한다. 신중하고 진지하게만 공을 처리하려고 하면 그런 빠른 판단과 감각적인 플레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빠른 판단과 감각적인 플레이는 오랜 연습과 자신감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주저하면 이미 때는 늦었다. 한국의 공격수들이 골 결정력이 낮은 이유도 바로 상대와 빠른 축구가 펼쳐질 때, 한 박자 빠른 판단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몸으로 체험해야 익힐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많은 축구 유망주들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유럽 축구 무대로 진출하는 것 같다. 그들이 유럽에서 배워야 할 것은 축구의 기술적인 면이 아닌, 빠른 판단과 빠른 감각이다. 신중하고 진지하게 플레이 하다 스피드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전체 스피드를 이끌어갈 수 있는 즉각적인 감각을 위해 바로 판단하고 반 박자 빠른 플레이가 필요한 것이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국 축구 대표팀을 맡은 다음 선수들에게 처음 주문한 것이 바로 “축구를 즐기라”는 것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너무 진지하게 애국심을 발휘하며 축구를 했는데, 그렇게 진지하고 신중하기만 해서는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히딩크 감독의 지적이었다. 그는 축구를 즐기라고 주문하며 감각적인 플레이를 요구했다. 지나치게 신중하고 진지한 것이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활동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것은 리더십 전반에 걸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업무도 지나치게 신중하게만 처리한다면 그것에 나의 감각과 창의성이 발목 잡힐 수도 있다.

 

 

신중함은 미덕이 아니다. 가끔 매우 신중한 사람들을 본다. 신중하게 많은 것을 생각하지만, 그런 신중함 때문에 때로는 많은 것을 놓치기도 한다. “한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전자제품 하나를 살 때도 좋은 선택을 위하여 고민하는데, 우리 앞의 수많은 선택에서 우리는 정말 신중해야 한다. 한번 선택으로 10년을 후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에 10년씩 사용하던 TV나 냉장고와 달리 요즘 세대는 전자제품을 사면 기껏해야 1년 ~ 2년을 쓴다. 휴대폰, MP3, 미니노트북 등 새로운 기능의 최첨단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1년 ~ 2년만 지나도 구식이 되고 고물이 된다.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주는 디자인도 빨리빨리 바뀌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한번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요즘 경영의 키워드는 스피드이다. 전략도 스피드가 필요하고, 의사결정도 스피드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장고를 하다 악수를 두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장고를 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악수인 셈이다. 신중함처럼 중요하고 때로는 더 중요한 것이 어쩌면 스피드, 직관, 감각이다. 신중하면서도, 자신을 믿고 자신의 신중함이 더 중요한 것들을 가로막지는 못하게 해야 한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