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살다 보면 삶이 반복됨을 세삼 느낄 때가 있다. 마치 나는 절대로 그런 시절을 살지 않을 것 같던 일들이 떡 하니 눈앞에 서 있어서 당혹스러운 경험을 한 번씩은 해 봤을 것이다. 그럴 때면 우리의 생각은 자주 세월과 나이를 들먹이며 과거로 갔다가 미래로 갔다가 분주해 진다. 말 나온 김에 과거의 삶을 따져보면 나 또한 자손을 안고도 남을 나이를 살고 있지만, 또한 어른들이 자주 말씀하시듯 생각은 아직 청춘에 머물러 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생각은 생각일 뿐 자식들은 쑥쑥 자라 자기 짝들을 생각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는 시집 장가보내는 일이 남 일이 아니게 다가온다.

내 나이 18살 즈음, 어느 가을날, 하교 길에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젊은 남녀가 다정히 가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저 여자는 얼마나 많이 배우고 예쁘고 훌륭하기에 남자가 선택했을까?’ 다정히 걷는 젊은 남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나는 줄 곳 그들을 바라보며 되뇌었다. ‘나를 선택해 줄 사람이 있을까? 나는 얼마나 공부하고 또 얼마나 훌륭해야 할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머리를 숙이고 걷던 그때 그 일이 지금도 잊혀 지질 않는다.

얼마 전에 아는 아이가 장가를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참으로 찹찹했었다. 그 아이의 성장을 모두 보아 온 터라 할 수만 있다면 혼인을 말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생각이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장가를 간다는 그 아이, 어린 시절 그가 어떤 행동을 했으며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양육을 받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나는 장가를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그 아이는 장가를 갈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독이고 성숙시키는 일을 우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장가를 갔고 아내를 얻었다. 유유상종! 이처럼 무서운 말은 없다. 닮아서 만나고, 만나서 닮고.

장가들기 전까지만 해도 말 수도 없고 조용하던 아이가, 장가가 무슨 벼슬이나 되는 듯 거들먹거리며 제 아비의 모습을 답습하기 시작했다. 동생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하려는 의식은 그의 아내를 통해 실행되었다. 형은 그래도 된다고, 윗사람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그는 유.무언 중에 배운 것들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제 아비가 그랬듯, 제 어미가 그랬듯, 아이는 어쩌면 더 건방지게 배워 나갔다. 이제는 둘이서 그렇다. 그 아이가 어느 날 자식을 낳을 것이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기도 어느 날은 귀찮고 미운 존재가 되는 순간들이 올 것이다. 그 아이는 자신이 자라며 경험했던 잠재 되어 있는 그 어느 날들의 불편한 순간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게 될 것이고, 아이는 그 감정들을 약자인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지는 자식에게 쏟아 낼 것은 불 본 듯 뻔하다.

발로 차고, 매달아 때리고, 군중들 앞에서 치욕스러운 욕설과 폭언을 하게 될 것이다. 그 행위는 자신이 경험했던 것보다 더한 분노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아이는 군대를 갔다 오면서부터 그러한 분노들을 조금씩 드러냈었다. 군대는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는 곳이며, 재대라는 의식은 진짜 사나이로서 무엇이든 해도 되는 특권이 되어 그 아이에게 억눌린 욕구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시간과 기회는 있었지만 머리는 공부를 못했고 어떤 지혜의 말도 들을 곳이 없었던 아이었다. 그저 본능적인 것에만 길들여진 아이였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런 아이가 비단 내가 아는 이 아이만 있을까? 부모는 자식에게 본이 되지 못하고, 자식은 부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시점. 이것은 현실이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밖으로 뛰쳐나간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가정에서부터 악은 자라고 있다. 부모라고 자식에게 제 못난 것을 감추려고 폭력에 폭언을 일삼고, 자식이어서 부모의 무모함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배운 것은 분노요 폭력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식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똑 같은 제 꼴의 자식으로 키우는 이런 악 순환에 대해 누가 책임 질 것인가?

‘요즘 젊은 것들 못써! 예의가 없어! 싸가지가 없어! 이기적이야!’ 말할 자격이 있는가? 보고 배운 곳이 제 집이고, 가르친 자가 제 부모인 것을. 뉘우치고 반성할 것은 자식이 아니라 부모다. 나부터 반성한다. 아이들이 어미를 어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명절을 맞고 보낸다. 사람들을 보고 헤어진다. 오고 가는 행위 속에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으리라. 너는 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에게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눈이 앞을 향해, 타인을 향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남만 보이고 나는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눈을 감아야 한다. 나를 보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