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로즈,

p 20 <꽃잎처럼 눈물처럼, 그리고 …> (청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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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꽃들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꽃말을 갖는다면, 파란 장미인 블루로즈의 꽃 말은 무엇일까? 꽃말을 붙여보자. 장미의 꽃말은 사랑이다. 장미가 사랑을 뜻하니까, 블루로즈는 <불가능한 사랑>이나 <영원한 사랑> 둘 중 하나면 좋을 거 같다. 어떤 사랑이 더 어울릴까?

 

 

주말에 친구가 시와 그림이 있는 화보집 <꽃잎처럼 눈물처럼 그리고…>란 책을 선물해줬다. 자신이 잘 아는 선생님의 그림과 시를 엮은 책이라며 화보집을 들고 우리집에 놀러 왔다. 친구와 아내는 꽃 그림이 참 예쁘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나는 꽃을 봐도 별로 특별한 느낌을 갖지 못했다. 그들은 나를 감성이 부족하고, 느낌이 없고, 메말랐고, 건조하고 등등의 말들로 몰아 부쳤다. 나는 매우 감성적인 사람인데,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억울했다. 하지만,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건 예전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언젠가 한번은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길을 가고 있었다. 아마 내 아내는 의도적으로 눈 꽃을 맞으러 외출 길을 잡았던 거 같다. 아내는 눈 꽃 속에서 행복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툭 내뱉었다.

“왠 꽃잎이 이렇게 떨어져, 귀찮게.”

 

나의 이 한마디 때문에 그날 이후 며칠동안 집안 분위기는 꽁꽁 얼어 붙었다. 아무 의미 없이, 나도 모르게 툭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며칠동안 ‘감성 비판’을 받았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무드가 없어요?”

“감성이 메말라서 아주 고갈됐군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하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스스로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살면서 더 풍부하게 느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단지 꽃의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이런 나의 변명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냐는 비난만을 더 받았을 뿐이었다.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서라도 화보집을 시간 내서 천천히 봤다. 꽃 그림보다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작가가 실제로 살아 있는 꽃과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 사용했다는 컬러 잉크라는 재료였다. 이 잉크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상태에서 점차 소멸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10년이나 20년 후에는 그림이 아예 없어진다는 거다. 그런데, 점차 없어질 그림을 왜 그릴까?

 

없어질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림은 골동품과 비슷해서 보존 상태가 좋다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유화는 작가가 죽어야 더 비싸진다. 당연히 그림을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물감을 선택하는 것이 상식이다.

“야, 그런데 이상하다. 왜 없어질 그림을 그리시는 거야. 그 선생님은?”

“본인이 죽은 다음에 그림만 남는 게 싫으시데.”

“그래도 작가가 죽어야 그림의 가격이 올라가잖아.”

“나도 한번은 그렇게 물어봤는데,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고 하시더라고.”

“자식이 없으신가?”

“있으셔. 둘이나.”

 

 

친구와 화보집을 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앞의 블루로즈라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장미의 색은 붉은색이다. 장미가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에 빨간색과 어울려서 정열적인 사랑과 같은 것이 장미에서는 느껴진다. 하얀 장미와 노란 장미도 있다. 하지만, 파란 장미는 없다고 한다. 파란색은 이성이나 합리적인 생각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어쩌면 처음부터 장미와 파란색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영어로 Blue Rose(파란 장미)는 불가능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랑을 의미하는 장미의 꽃말과 합하여 블루로즈는 ‘불가능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화보집의 블루로즈에 있는 시를 보면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었다.

 

‘불가능한 사랑’과 ‘영원한 사랑’.

어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사랑’이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사랑’이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영원한 사랑’이란 ‘불가능한 사랑’인 거 같기도 하고, 마음 속의 감정이 뒤엉켜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가끔은 우리의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감성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그리고, 감성에서 탈출하는 방법 한가지를 소개한다. 바로 현실에 없는 파란 장미를 만들어보는 거다. 아마 누군가가 유전자 조작으로 파란 장미를 만든다면 돈벌이가 되는 사업이 될 거다. 나는 간단하게 파란 장미를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먼저 하얀 장미 몇 송이를 사라. 그리고 양동이에 물을 담고 파란 잉크를 섞어라. 그리고 하얀 장미를 양동이에 놓아보라. 파란 물을 먹은 하얀 장미는 몇 시간이 지나면 파란 장미가 된다. 그 파란 장미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사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선물해보라. 아마 감동할 거다.

 

만약, 당신에게 제발 좀 사라져줬으면 하는 스토커 같은 이성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도 파란 장미를 만들어 선물해라. 당연히 그에게는 ‘불가능한 사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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