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15개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전체 소요 전력의 21%를 생산하고 있는데, 2025년까지 이 원전 용량의 절반 정도가 노후화로 퇴역할 예정이다.
이 노후 원자력 발전소들을 대체하기 위해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3개의 컨소시엄 (EDF & CGN, Horizon, Nugen)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 3개의 컨소시엄 중 하나가 한전이 참여하려는 뉴젠이다.

이 뉴젠은 2009년에 프랑스의 ENGIE(이전 GDF Suez)와 스페인의 Ibedrola 그리고 영국의 SSE가 공동 투자한 프로젝트로서 영국 원전해체청(Nuclear Decommissioning Authority)의 부지 구매 옵션을 7천만 파운드에 획득, 3.6GWe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한다.
그 후, 소유 지분의 변화를 거쳐 도시바가 뉴젠 지분 100%를 소유하게 되었고, 이 소유지분을 팔려고 한전을 우선 협상자로 지정했는데, 한전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도시바가 이 우선 협상자 지위를 해지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이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영국은 계속 친원전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은 정부나 보수당, 노동당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유민주당 등 대부분의 군소 정당들 그리고 국민들 대다수도 친원전을 선호하고, 원전을 부활시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일단 사라진 원전 산업기반을 되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력시장 민영화 이후, 신규원전 3개 컨소시엄을 모두 프랑스, 중국, 일본의 외국 전력업체들이 장악했지만, 영국 정부는 신뢰할 수 있는 저탄소 전력원인 원자력 발전 시설 확충을 위해 신규원전 건설을 허가하고 있다.
이 3개 컨소시엄 중에서 Horizon은 원래 독일 전력회사인 RWE와 EON이 추진하던 신규원전 프로젝트였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 정부가 탈원전을 선택하자, 독일 전력회사인 RWE와 EON도 추진하던 영국 신규원전 프로젝트인 Horizon에서 철수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일본의 히타치에 매각했다.

아마, 바로 이 문제가 한전의 Nugen 해결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이 아닐까 싶다.
한국 정부는 탈원전을 표방하는 반면, 한국 정부가 최대 주주인 한국의 전력회사인 한전은 이와 반대로 신규 원전을 추진한다. 영국 정부나, 다른 시장 참여자와 소비자들은 어느 쪽 신호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한편, 중국은 EDF의 신규원전 컨소시엄에 성공적으로 참여했는데, 이는  한전의 뉴젠 준비에 참고할 만하다. 초기에 영국은 중국의 신규 원전 건설 및 운영 실력을 그다지 신뢰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 측의 각계각층에 막대한 투자와 적극적인 홍보로 결국 중국 원자로의 영국 진출을 성공시켰다.

사실 우리는 중국보다 훨씬 좋은 원전 사업 실적과 산업 여건을 가지고 있고, 영국 정부나 국민들도 한국이나 한국 원전을 중국이나 중국 원전보다 훨씬 더 신뢰한다. 해외에 이런 좋은 여건과 21조 원의 사업 기회와 수만 명의 고급 일자리를 마련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시바삐 한국 정부와 한전이 신규 원전에 대한 통일된 신호와 움직임을 해외 시장에 보일 필요가 있고, 대화상대들이 믿고 지원할 수 있도록 정리된 입장과 정책을 잘 준비해서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영국과 한국 사이에는 동, 서양의 차이뿐만 아니라 언어나 문화, 법률, 제도 등 전혀 다른 많은 차이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뉴젠의 성공을 위해 우선 극복해야 할 차이는 전력산업 제도상의 차이다.
영국 전력시장은 민영화된 시장인 반면, 한국 전력 시장은 아직 정부 주도하에 공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규제된 시장이다.

영국 신규 원전 컨소시엄들은 민영화된 시장원리에 따라 모두 자기 책임하에 모든 위험을 부담하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시설들을 운영한다. 정부가 이들 전력업체의 수익을 보장하지도 않고,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EU 차원에서는 여러 형태의 정부지원(State aid)과 간섭을 불공정행위로 간주하여 금지하고 불이익까지 주고 있다. 당연히 영국 정부가 다른 컨소시엄과 차별적으로 한전에만, 수익을 보장해주거나, 손실을 보전해주지도 못한다.

반면, 한국은 정부 통제와 주도하에 공기업인 한전에 의해 전력사업이 운영되고, 한전 자체적으로 책임지고 결정하거나 운영할 수도 없다. 해외사업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투자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위험이 회피되어야 하고, 확정된 수익이 보장되어야 하니 결국 입찰형 프로젝트를 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영화된 신규 원전 시장에서 우리 업체들이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저가나 저리로 입찰해 경쟁하기 어렵고, 설사 억지로 출혈 경쟁해서 프로젝트를 획득한다 해도 손해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해외 프로젝트들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한전이 다른 경쟁국들처럼 선투자를 통해서 프로젝트 소유권을 확보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한다.
물론 100년 넘게 이어온 이 차이들을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러시아, 중국 같은 완전히 규제된 시장의 국영기업들도 하는데, 이들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라는 한국이 못할 이유가 있을까?



김동성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