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을 파러 갔다. 도장이 필요해서, 지하철 역 건너편 건물에서 도장을 팠다. 요즘 도장은 컴퓨터가 판다. 이름을 써주면 컴퓨터 모니터에 도장의 모습이 나타난다. 도장의 모양과 글씨체를 선택하면, 자신이 선택한 것에 따라 컴퓨터 모니터에 도장의 모습이 변한다. 눈으로 확인하고 최종 선택을 하면, 기계가 움직이며 도장을 판다. 사람이 손으로 파는 것보다 더 정교해 보였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반에는 아버지가 도장을 파는 녀석이 있었다. 아버지가 나무 판에 당시에 유행하던 드라마 <서울은 내 것이다>를 새겨준 것을, 학교에 가져와 자랑하던 그 친구가 생각났다. 판화를 할 때 사용하던 칼 같은 걸로 직접 조그만 도장에 이름을 새기는 걸 보면서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도장을 파고 지하도를 지나서 회사로 들어오는 길에 깜빡 까먹은 일이 생각났다. 편지 봉투를 샀어야 했는데, 그냥 지나친 거다. 편지 봉투를 사러 다시 지하도를 건너가고 싶지가 않았다. 회사 옆 건물의 지하에 무턱대고 가보았다. 그곳에도 도장 가게가 있었다. 도장 가게에서 편지 봉투를 사는데, 주인 아저씨는 도장을 파고 계셨다. 직접 손으로 도장을 파시는 거다. 건너편에서는 기계가 하는 일을 이 가게에서는 사람이 직접하고 있다. 기계가 하는 일을 사람이 하는 건 별로 경쟁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도장을 파시는 아저씨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남들은 컴퓨터로 도장을 파는데 손으로 도장을 파는 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도장을 파시는 아저씨의 책상 앞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도장은 손으로 파야 합니다>

 

가게를 나오면서 나는 도장을 파고 계시는 아저씨를 한참 바라봤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도장집에 갔었다. 그것도 불과 10분 사이에 두 곳이나 갔다. 한곳은 컴퓨터가 도장을 파고 있었고, 다른 한 곳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보았던 그대로 사람이 직접 도장을 새기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서로 다른 두 가게를 다녀서인지 몰라도 두 가게의 모습이 비교가 되면서 계속 머리 속에 남았다.

 

손으로 도장을 파시던 아저씨는 왜 굳이 도장은 손으로 파야 한다고 하시는 걸까? 컴퓨터로 도장을 파면 쉽게 위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꼭 인감이 아니더라도 도장은 손으로 파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신 거 같았다.


<도장은 손으로 파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계속 생각났다. 만약, 내가 도장을 파는 사람이라면 나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쉽게 도장을 팔까, 아니면 손으로 파야 한다는 걸 고집할까? 아마, 어떤 사람들은 퍼즐을 풀듯이 <기계로 쉽게 도장을 새기고 나서 손으로 어떤 특징을 넣겠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도장을 파는 사람이라면, 나는 컴퓨터로 도장을 팔 거 같다. 쉽게 더 많은 사람들의 도장을 파는 길은 컴퓨터로 도장을 파는 거다. 그래야, 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나의 선택은 분명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도장은 손으로 파야 합니다>라는 글을 적어놓고, 손으로 직접 도장을 파시던 아저씨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

 

손으로 직접 도장을 파시던 그 아저씨한테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멋과 자기 직업에 대한 어떤 철학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실, 위조 때문에 도장을 손으로 파야 한다는 건 그렇게 설득력 있는 말이 아니다. 도장이라는 건 원래 위조가 쉬운 거다. 그래서, 위조를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친필 서명을 한다. 컴퓨터로 파나 손으로 파나, 한번 찍혀있는 도장과 똑 같은 모양의 도장을 파는 건 도장을 파는 기술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컴퓨터로 도장을 파겠다고 선택한 것은 도장 파는 일을 돈은 버는 경제활동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손으로 직접 한다는 것은, 그 일이 그 사람에게는 단순하게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일거다. 손으로 도장을 파면서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사람에게는 도장을 파는 일이 돈을 버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자신의 삶이 되는 것 아닐까?

 

물론, 컴퓨터를 도입할 돈이 없거나, 컴퓨터를 켜는 것조차 못하는 컴맹이어서 어쩔 수 없이 손으로 도장을 파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이 모두 컴퓨터를 도입할 때, 자신의 주관과 생각으로 손으로 도장 파는 일을 고수하는 사람은 단순히 컴퓨터를 돌리는 사람과는  누리는 삶이 다를 거 같다. 한명은 장사를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명은 도장을 파는 사람이다. 도장을 파는 것의 의미는 도장을 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이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길 바란다. 그렇다면, 자신의 일이 단지 돈을 버는 경제활동이외에 어떤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져야 할 거다. 설렁탕을 만드는 사람은 단지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설렁탕을 만드는 사람이어야 할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단지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할거다.

 

물론, 컴퓨터로 도장을 파면서, 단지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도장을 파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도장을 파는 사람이 도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도장과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일거다. 인생의 멋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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