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버스 종점. 우리 동네는 버스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버스 종점이 있는 동네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버스 종점에서도 빠른 걸음으로 15분을 더 올라가야 우리집이 나온다. 종점에서 좁게 난 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넘어서 꼭대기를 지나야 우리집이 나온다. 버스 종점에서 시작하여 가파르게 올라가는 언덕을 따라 미로처럼 좁은 길들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고 그 미로를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동네다. 내 기억이 시작할 때부터 나는 계속 이곳에서 살았다. 내 인생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벗어나고 싶은 가난한 동네.


나는 금형 공장에 다닌다. 우리 회사는 금형 회사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회사 중에 하나다. 사실, 객관적인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회사에서는 항상 국내 최대의 금형 회사라고 한다. 직원은 모두 합치면 100명 정도. 내가 이 회사에 입사 할 때에는 직원이 대략 50명을 약간 넘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100명 가까이 늘었다. 회사의 매출도 내가 입사한 5년 전과 비교하면 300억에서 500억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처음 입사해서 나는 공장 현장에서 3년 정도 쇠를 절단하는 일을 했다. 기계가 하는 일이지만, 이 일도 기계만을 단순하게 작동시키는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한다. 현장에서 일을 하던 나는 2년 전부터 공장장의 신임을 얻어 영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영업팀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5명인데, 회사 매출의 60%는 나를 통해서 발생한다. 사실, 회사의 매출이 늘어난 건 내가 영업부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터다.


오늘은 회장님의 둘째 아들이 사장으로 취임하는 날이다. 회장님의 첫째 아들은 의사여서 둘째 아들이 사업을 물려받았다. 나보다 고작 3살 많지만, 부모 잘 만나서 젊은 나이에 사장이 되는 거다. 부모 잘 만나서.

 

"와, 좋겠다. 누구는 부모 잘 만나서 젊은 나이에 사장하고."
"임마, 부럽냐?"
"뭐, 부럽다기보다도, 그렇잖아요. 다른 유능한 분들도 많은데, 아들이라는 이유로 누구는 사장이 되니까."
"네 말대로 부모 잘 만나서 젊은 나이에 사장하는 건 맞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 지금 가장 필요한 사장이다."

 

공장장님이다. 공장장님은 회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다. 온화하시고, 성실하시고, 리더십도 있으시고, 한마디로 회사에 보배와 같은 분이다. 공장장님도 나를 친동생처럼 또는 친아들처럼 대해주신다. 그래서, 나와는 나이 차이가 많아도 가장 친한 분이고, 내가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분이다.


"물론, 회장님 아들이 좋은 대학 나왔고, 미국에서 유학도 했지만, 그래도 회사에 입사한 건 저보다도 1년 늦잖아요."
"임마, 회사에 입사한 순서대로 사장되냐?"
"그래도요."
"그렇게 따지면, 사장님은 태어나면서부터 회사를 보아왔으니까, 우리 중에 가장 오래 회사를 옆에서 보아온 사람이다."
"어유, 그런 게 아니죠. 제 말은 다른 유능하신 분들도 있는데,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사장이 되니까, 그렇죠."
"회장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인 회장님의 인맥이나 관계들이 사장인 아들에게 자연스럽게 넘어갈 거다. 그건 회사에 그만큼 유리한 거지. 너, 지난 11월에 일본에 수출 계약한 거 생각나지?"
"네. 그 계약으로 우리회사의 매출이 년간 50억이 늘었다고 파티 했던거요?"
"그래, 그 계약도 회장님과 친분이 있는 일본 회사가 사장님을 어려서부터 알아서, 이번에 사장으로 취임한다고 해서 된 일이야. 사장님이 직접 계약하셨잖아."
"아무튼, 제가 따지자는 건 아니고요. 부모 잘 만나서 쉽게 좋은 자리 차지하는 건 사실이잖아요."

 

공장장님은 찌그러진 내 얼굴을 보며 빙그레 웃으시고, 내 어깨를 토닥거리셨다. 나는 공장장님과 싸우고 싶지 않다. 그분과 내가 언쟁을 높일 필요는 전혀 없다. 나도 공장장님의 말씀을 인정한다. 영업을 하면서 내가 느낀 건 인맥이나 사회적인 관계가 제품의 품질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거다. 그런 면으로 생각하면 회장의 아들이 사장의 자리에 올라가는 건 회사로서도 분명 유리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아들이 품행이 바르고 똑똑하고 성실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사장님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인생이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갖지 못하는 걸 그 사장이 가져서 그렇게 생각이 드는 걸까. 아무튼, 기분이 유쾌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사장님 취임식의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나고, 공장 뒤 뜰에서 저녁 파티가 이어졌다. 중앙에 멧돼지가 꼬챙이에 찔려 불 위로 돌아가고 있고, 간이 테이블에 음식들이 나왔다. 나는 공장장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우리 쪽으로 고기를 좀 더 많이 확보했다.

 

"아직도 계속 배 아프냐?"
"제가 언제 배 아파했어요?"
"너 부잣집 아들이 사장된다고 배 아파했잖아."
"제가 뭘요."

 

공장장님은 술을 따라주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나는 공장장님이 좋다. 언제나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행복한 웃음을 전파하시는 분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무척이나 가난했다."
"지금도 그렇게 부자이신 건 아니에요. 공장장님."
"임마, 나 정도로 살면 괜찮지."
"부자들이 어떻게 사는 줄 아세요? 우리는 죽었다 깨나도 그렇게 못 살걸요."
"나는 꼭 그런 부자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게 사는 것보다 나는 지금의 내 생활에 너무나 감사한다. 옛날하고 지금의 생활을 비교해보면, 지금이 너무 행복하거든."
"그야 당연하죠. 지금은 옛날보다 잘 살잖아요."
"네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야. 왜 지금이 옛날보다 더 잘 살아야 하냐? 우리가 모두 잘 살게 된 게 당연하냐? 그건 당연한 게 아냐. 그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지."
"사실, 우리 집은 아직도 잘 살지 못하는데요?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 너 말대로, 너희 동네만 생각해봐. 서울의 으리으리한 곳들과 비교하지 말고, 너희 동네만 생각해봐. 너 어렸을 때보다 훨씬 나아졌지?"
"그래도, 다른 동네들과 어떻게 비교를 안 해요?"
"너 말대로 비교를 할 거면, 단순히 보이는 것만 비교하면 안 되지.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걸로 어떻게 비교를 하냐?"

 

공장장님은 소주를 몇 잔 드시더니,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전에 한두 번 들었던 이야기도 있고, 처음 하시는 이야기도 있고. 젊은 시절의 이야기에서부터 요즘 생활까지 솔직하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도 내 속내를 언제나 거짓없이 공장장님께는 드러낸다. 모닥불이 있는 겨울 밤의 공기는 너무 상쾌하다.


내가 공장장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분께 느끼는 감사와 긍정의 에너지 때문이다. 공장장님은 항상 먼저 감사를 하신다. 불만과 비판보다는 먼저 감사를 하신다. 남이 나를 속이려고 하지 않나를 생각하기 보다는 먼저 상대를 친구로 보고 그와 친구가 되신다. 그런 그분의 감사와 긍정의 에너지가 그분의 행복과 성공을 만드는 것 같다.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일수록 비판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비판을 잘하는 사람이 지식인이라는 선입견을 사람들은 갖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공장에서 사람들과 겪어보면서 나는 비판이나 불만보다는 감사와 긍정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큰 행복과 풍요를 준다는 걸 느꼈다. 공장장님처럼 말이다.


버스가 처음으로 출발하는 버스 종점. 우리 동네는 버스가 가장 먼저 출발하는 버스 종점이 있는 동네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버스 종점에서 약간 떨어진, 그렇지만 몇 분 걸으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우리집이 있다. 버스가 출발하기 때문에 삶이 살아있지만, 약간은 시끄러울 수도 있는 종점에서 소음이 끝나는 정도의 위치에 우리집이 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동네다. 내 기억이 시작할 때부터 나는 계속 이곳에서 살았다. 이곳은 내 인생의 모든 기억을 담고 있는 곳이다. 나의 소중한 추억이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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