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우리 최고의 어린이!"
"아빠. 어디야?"
"음. 아빠 지금 선생님들하고 같이 저녁 먹고 있어."
"오늘 늦게 들어와?"
"아빠가 좀 늦을 거 같은데."
"빨리 들어와서 장기 둬야지?"
"우리 최고의 어린이! 오늘은 먼저 자고 있어. 아빠가 오늘은 좀 늦을지도 모르거든."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요즘 장기에 빠졌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들과 장기를 두고 출근을 해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아들은 장기판을 펼치고 나의 팔을 잡아 끈다. 그리고, 아내도 챙기지 않는 나의 퇴근 시간을 아들이 체크한다. 저녁 약속이라도 있어서 늦으면, 빨리 들어오라고 독촉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물론, 같이 장기를 두자는 이유에서다.

 

"아빠. 엄마가 좀 바꾸래."
"그래."
"여보. 최고의 어린이 아버지. 지금 당신의 6살짜리 딸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우리 딸이 뭐라고 했는데?"
"당신 아들이 <아빠는 왜 안 오시지?>라고 하니까, 옆에 있던 당신 딸이 <어디서 또 술 마시고 있겠지> 그러는 거에요. 글쎄."
"그래? 정말? 우리 딸 다 컸네. 하하하."
"좋아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6살짜리가 그런 말을 하는지, 원. 아무튼. 이미 늦었지만, 너무 늦지 말고 오세요."
"알았어."
"내일이 휴일이라고 마음 놓으시면 안 되요. 내일 아버님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아버님은 항상 오전에 오시는 거 알죠?"
"알았다니까.."

 

매일매일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하루 건너 하루 꼴로 야근 비슷한 초과업무에 시달리는 건 아마 나뿐이 아닐 거다. 대부분의 월급쟁이가 비슷하겠지. 가끔 업무와 회식으로 연속 늦는 날이면 아내는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사냐고 푸념이다. 나도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라도 해서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거 아닐까?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침이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있는데, 벌써 아들 녀석은 장기판을 펼쳐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밥도 먹기 전에 대충 얼굴만 씻고 아들과 장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장기의 규칙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아들의 장기 수준은 매우 유치하다. 집중하지 않고 대충 둬도 아들을 이기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들을 바로 이기면 아들이 크게 낙담한다. 녀석이 누굴 닮아서 그런지, 자신이 처참하게 패했다는 느낌이 들기라도 하면, 큰 소리를 지르며 울면서 방 바닥을 뒹군다.

 

나는 우리 아들을 '최고의 어린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칭찬이 아이를 더 올바르게 이끈다고 생각해서 아주 유치하지만, 아이의 수준에 맞게 재미를 섞어서 부르는 거다.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재미가 더 크지만 말이다. 아무튼. '최고의 어린이'에게 참패를 안겨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일정한 수준으로 아들을 이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지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자신에게 지는 걸 아들도 원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요즘은 내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때로는 질 수밖에 없는데 우연을 가장하여 이기는 시나리오를 따라간다.

 

"야. 최고의 어린이. 넌 항상 너가 먹는 것만 신경 쓰냐? 너가 죽는 것도 봐야지, 너가 먹는 것만 보니까, 항상 아빠를 이기지 못하는 거야."
"그래도, 먹어야지 이기지."
"장기는 많이 먹어야 이기는 게임이 아니야. 왕을 먹는 게임이지."
"나도 알아. 왕을 먹어야지."
"그리고, 너처럼 내 꺼는 하나도 안 죽고 상대의 것을 먹겠다고 하면 절대 많이 먹을 수도 없어. 일반적인 게임이란 내 꺼는 적게 죽고, 상대의 것을 많이 먹겠다고 하는 게 게임을 잘하는 거야. 알겠어?"
"모르겠어."

 

아들과 장기를 두면 녀석은 자신이 먹는 것만 신경 쓴다. 자신의 병사가 죽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상대편의 것을 먹을 생각만 한다. 그러니, 장기를 이길 턱이 있나.

 

<모든 일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임을 잘하는 건 플러스만 만드는 게 아니라,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전체 합을 키우는 거다. 큰 플러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당한 마이너스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최고의 어린이에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녀석의 수준에 맞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결국 포기한다. 그 사람의 수준에 맞게 이야기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들과 놀다 보면 선생님이나 엄마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께서 오셨다. 아버지는 최고의 어린이를 무척 좋아하신다. 첫 손주라서 그런지 아버지의 손자 사랑은 각별하다. 그래서, 거의 매주 휴일이면 아버지께서는 우리집에 오신다. 아버지도 이제는 60보다는 70이 가까우신 분인데, 아직도 일을 하신다. 건강을 위해서도 일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실제로는 생활을 위해서 일을 하시는 거다. 자식 된 도리로 가끔씩 눈물이 난다. 특히, 추운 겨울에 일찍 가게 문을 여실 걸 생각하면 더 더욱 그렇다.

 

"저기 지하철 역 있는데, 노숙자들 사이에 어떤 애들이 끼여있더구나."
"아버지, 지하철에서 마을버스 타고 들어오시지. 그냥 또 걸어서 올라오셨죠?"
"뭐,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그래도요. 날도 춥잖아요." 
"아무튼, 노숙자들 사이에 애들까지 그렇게 불량하게 있는 걸 보니까, 마음이 안 놓이더라."
"그 쪽 길이 좀 그래요."
"그건 사회의 치안하고 관련 있는 문제인데. 왜 그런 사람들을 그렇게 방치하는지."
"정부에서도 어떻게 하고 싶겠지만, 뭐 예산이 없겠죠."
"사실, 부자들이 기부를 많이 해야 해. 그건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는 감상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 자신을 위하는 이기적인 생각으로도 사회 안전 시설에 돈을 써야 하는 거야. 가량, 부자의 아들이 다른 곳에 가서 혼자서 살게 아니라, 이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면 범죄가 우글거리는 곳에서 사는 것보다는 치안이 안전하고 복지가 잘 이루어진 사회에서 살기를 부자도 바랄 거 아니냐. 꼭 부자만이 아니라, 우리도 세금을 좀 더 많이 내고 치안의 질을 높여야 돼. 그래서 어려운 시절일수록 불쌍한 사람을 더 도와야 한다는 거다. 우리 손주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자기 것만 움켜쥐려고 하는 게, 오히려 바보인 거지."


아버지가 오시자 최고의 어린이는 금새 장기판을 들고 왔다. 할아버지가 들어오시자마자 장기판을 들고 나오는 걸 엄마가 막았다. 아무리 장기가 두고 싶어도 할아버지가 잠시 앉아서 쉬시면서 차라도 한잔 드시고 나서 장기를 두라고 엄마가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엄마의 무서운 얼굴도 효력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어느새 녀석은 장기판을 들고 왔다.

 

"할아버지. 장기 둬요. 저랑 장기 두기로 하셨죠?"
"하하, 그러자."
"그런데, 할아버지. 아빠는 나만할 때, 장기 잘 뒀어요?"
"너희 아버지도 너 만할 때, 할아버지하고 장기 많이 뒀지."
"누가 이겼어요?"
"할아버지가 항상 이겼지. 너희 아버지는 별명이 <김땡깡>이었다."
"김땡깡요?"
"그래, 할아버지한테 장기 지면 바로 땅바닥을 뒹굴며 땡깡을 부려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단다."
"정말요? 할아버지가 다 이겼어요? 우리 아빠 되게 잘 두는데."
"할아버지는 더 잘 둔다. 하하하."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와 장기를 두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 말대로 나는 항상 졌다. 내 기억에 하루는 집중을 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두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꼭 이기리라 마음 먹고 아버지와 장기를 뒀다. 하지만,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나는 참패했다. 그때, 나의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소리 내서 계속 울었다. 하도 울어서 장기판을 눈물로 가득 적셨던 기억이 있다.

 

지금 저쪽에는 그때와는 다르게 많이 여위신 아버지와 최고의 어린이가 장기를 두고 있다. 예전보다 많이 수척해지시고 작아보이는 아버지를 보니까, 왠지 모르게 또 눈물이 난다. 그때와는 다른 눈물이지만, 그때처럼 장기판을 가득 적실만큼의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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