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챔피언이 되는 길은 험난하다. 세계 최고 기량을 갖춘 골프 명인들,천재적 재능으로 무장한 신성(新星)들이 총집결한 곳이 PGA투어다. 말 그대로 ‘바늘구멍’같은 좁은문을 뚫고 또 뚫어야만 꿈의 PGA챔프에 등극할 수 있다.
미국만 PGA 소속 프로가 2만9000여명이다. 여기에 7000~1만여명에 이르는 미국외 국가의 프로 숫자를 합치면 얼추 10만명이 넘는 프로가 경쟁상대들이다. 이가운데 매년 125명 정도가 챔프자리에 오를 기회를 잡는다.
투어에 입성하는 것도 가시밭길 이지만, 우승은 고사하고 시드 유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러피언투어 통산 12승을 기록중인 이언 폴터(영국)가 올해 턱걸이로 시드를 유지한 뒤 휴스턴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극적으로 마스터스행 티켓을 따낸 일화는 챔프로 가는 길이 얼만큼 지난한지를 가늠케 한다.
하지만 이런 ‘정글’투어에도 우승확률이 갑자기 확 높아지는 때가 있다. 첫 번째가 초대형 이벤트 대회인 WGC(월드골프챔피언십)와 동시에 ‘B급 대회’가 열릴 때다. WBC는 총상금이 1000만달러(약 120억원)에 달하고,꼴찌를 해도 4만3000달러 안팎의 상금을 가져갈 수 있어 ‘쩐의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세계랭킹 약 70위권 안에 있는 선수들이 대거 이 대회로 몰려가는 반면 이들의 그늘에 가려있던 중하위권 선수들은 앞다퉈 B급 대회에 출전한다.
이런 호기를 놓치지 않은 이들이 최근에만 3명이 있다. 지난해 8월 WGC-브리지스톤인비테이셔널과 동시에 열린 배라큐다챔피언십에서 크리스 스트라우드가 프로 데뷔 14년만에 첫 승을 거머쥐었다. 10월엔 라이언 아머(미국)가 WGC-HSBC챔피언스와 동시에 열린 샌더슨팜스챔피언십에서 투어 데뷔 18년만에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또 지난 3월 WGC-델 매치플레이와 같이 열린 코랄레스 푼타카나 리조트 클럽챔피언십에서는 브라이스 가넷(미국)이 생애 첫 승의 기쁨을 맛봤다. 세계랭킹 200위권의 무명선수이자,올해 첫 투어에 데뷔한 신인이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보기좋게 낚아챈 것이다. 이 대회에 출전한 최경주도 모처럼 공동 5위라는 좋은 성적을 내며 기분 전환을 했다.
메이저 대회와 같은 기간 열리는 대회도 무명 딱지를 뗄 호기다. 7월에도 이런 B급 대회가 한 번 더 있다. 디오픈과 같이 개막하는 바바솔챔피언십이다. 두 대회 다 19일 개막해 나흘간 열전을 벌인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루키 그레이슨 머레이가 우승해 상금 63만달러를 챙겼다. 페덱스랭킹 포인트 300점도 받았다. 절친 사이인 찰리 위(위창수)와 최경주는 나란히 이 대회에서 공동 35위를 차지해 1만7300달러를 받아갔다. 커트 탈락을 밥먹듯하는 이들에겐 ‘짭짤한’가외 소득이다. 올해 이 대회는 메이저 대회와의 흥행 경쟁을 의식해서인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 챔프 브리타니 린시컴(미국)을 출전시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8년 미셸위가 PGA 투어 리노 타호 오픈에 출전한 이후 10년 만에 성대결이 펼쳐질 참이다.
B급 대회라고는 하지만 엄연한 정규투어 챔피언 예우를 받는다. 2년간의 출전권을 보장받고,세계랭킹을 끌어올릴 수 있는 포인트도 쌓을 수 있다. 물론 상금이나 포인트 규모가 A급 대회의 50~70% 수준이라 입맛을 다실 수는 있다. 그래도 한 푼이라도 아쉬운 하위권 선수들에겐 지나칠 수 없는 기회다. 적은 상금이 50만달러를 넘으니,우리 돈으로 6억원은 된다.
다만 골프팬들의 시선을 메이저에 뺏긴다는 점에선 쓸쓸함을 감수해야 한다. 무명들이 PGA 투어를 살아가는 생존법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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