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틱효과란 불황기에 역설적으로 립스틱처럼 꾸미는데 도움을 주는 상품의 매출이 증가하는 현상입니다. 불황기에는 가용한 자원이 줄어듭니다. 이때 사람들은 한정된 자원을 생존과 재생산 중 주로 어디에 쓸지 결정해야 하는데, 주로 재생산쪽에 자원을 투여합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쪽에 자원을 많이 쓰게 되면, 내 한몸이야 살아남겠지만, 후속세대가 단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황기에는 사람들이 전반적인 소비는 줄여도,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상품의 소비는 오히려 늘립니다. 여자의 경우, 화장품이나 의류가 해당합니다. 남자의 경우에는 사회적 지위나 부를 과시하는데 도움을 주는 상품이고요.

모든 주장에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학술지 성격과 사회심리지(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2012년 103권 2호에 게재된 "경제 퇴조기의 미의  촉진: 짝짓기, 소비, 립스틱 효과((Boosting beauty in an economic decline: Mating, spending, and the lipstick effect)"란 제목의 논문에서 정교한 실험설계를 통해 립스틱효과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에 대해 불편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 경제학과 학과장인 줄리 넬슨입니다. 넬슨은 이 연구가 미국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결과를 전체 여성에 과도하게 일반화했을 뿐 아니라, 립스틱효과의 작용에 대한 설명도 근거없는 사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고 ABC뉴스가 전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으로서, 여자들이 치장하는 이유가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가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ABC의 보도는 영국의 데일리메일 등 여타 다른 매체가 받았고, 이를 국내 언론이 "립스틱 효과 뭐길래 성차별 부추기나"라는 제목으로 전했습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하는게 왜 성차별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ABC기사를 읽어보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줄리 넬슨의 인터뷰 내용은 과학적 연구에 기반한 내용이 아니라, 한 개인의 주장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성격과 사회심리지에 실린 논문은 모두 5차례의 연구로 이뤄져 있습니다.

연구1: 20년간 실물경제지표를 통한 검증. 경제 불황기에 화장품같은 제품의 판매가 증가했습니다.

연구2: 불황을 묘사한 신문기사를 읽은 여성이 대조집단 여성에 비해 의류나 화장품 등 꾸미는 상품에 대한 구매의도가 높았습니다.

연구3: 불황을 묘사한 동영상을 본 여성이 대조집단 여성에 비해 탱크탑, 진, 향수, 메이크업 등의 구매의도가 높았습니다. 그리고, 이 구매의도는 재력가와의 혼인욕망에 의해 매개됐습니다.

연구4: 여성이 상품을 구매할 때, 상품의 가격보다는 기능(더 잘 꾸밀 수 있는가)을 더 중시했습니다. 립스틱효과가 저렴한 상품 구매효과가 아니란 것을 보여준겁니다. (여성의 재력은 상품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연구5: 같은 화장품이라도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도움이된다고 소구한 상품을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호도는 이성에 대해 매력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동기가 높을 때 두드러졌습니다.

립스틱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확실하게 제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연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는 동기가 있는 여성의 경우, 불황기에 본인의 매력을 돋보이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는 상품에 지출을 늘린다"입니다.

그런데, 줄리 넬슨은 "남성에게 매력을 어필하려는 욕구가 높은 여성에게 적용되지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게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논문의 연구5에서 입증한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며 논문이 틀렸다고 한 겁니다. 논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논문 제목 혹은 그 논문을 피상적으로 소개한 뉴스만 보고 반론을 제시했다는 방증입니다. 이런 것은 기자가 미리 걸러냈어야 합니다. 기자도 해당 논문을 끝까지 읽어 보지 않았으니 걸러내지 못했던 것이겠지요.

연구 논문을 소개할 때면 해당 논문을 제대로 읽어봐야 합니다. 일종의 사실확인 절차입니다. 기자들이 사실확인의 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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