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성형외과 병원 판촉행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총학생회와의 제휴행사였다네요. 비난이 일어 행사를 중단했다고는 합니다. 성형외과에서 대학가를 공략하는 이유는 취업난입니다. 실제로 그 대학교에 설치된 부스에서는 학생들에게 면접 볼 때 외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설문까지 진행했다고 합니다.

성형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입니다. 우려와 기대가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외모를 보완 혹은 한층 "향상"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함께 참된 모습을 왜곡한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성형이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한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끄집어 내는 논리가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입니다. 그러나 성형은 한국 사회 고유의 현상은 아닙니다. 외모지상주의 역시 한국만의 고유현상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이상해서 외모를 지나치게 따지는게 아니란 겁니다. 외모를 따지는 건 한국문화의 특수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극사회적 동물이기에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소통에는 언어뿐 아니라 얼굴 표정 생김새 등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얼굴의 미세한 근육 움직임 하나 하나까지 움직여 의도를 전달하고, 그 의도를 파악할 정도니까요. 물론 이 과정은 자동입니다. 의식으로는 알아채지고 못하고, 조작하지도 못합니다.

생김새 그 자체도 상당히 중요한 소통수단이 됩니다. 특히 상대의 역량와 선의/악의를 파악하는 근거로 활용됩니다. 인상 심리의 대가인 토도로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그 판단에 걸리는 시간은 0.1초입니다. 물론 토도로프 교수의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외모지상주의에 물들었다"고 비난받는 한국인이 아니었습니다.

외모를 따지는 성향은 한국문화의 특수성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렇다면 성형은 장려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은 "그렇다" "그렇지 않다" 모두 가능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있습니다. 성형에는 부작용의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성형을 원하는 사람은 성형을 선택하기 전에 그 과정의 고통과 부작용의 가능성에 대해 이해하고 느낄 권리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느낌"입니다.

좋은 인상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본능 수준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성형의 고통과 부작용에 대해 지식으로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게 어떤 고통이고,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본능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미 결정을 다 한 다음에 수술전 글자로 쓰여진 내용을 읽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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