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4차 걷기에 나선 날은 여름이 시작된다는 절기 '입하'이자 어린이날. 집 문을 나와 걸어서 한강과 안양천이 만나는 지점에 접근했다. 서울둘레길 6코스는 가양대교 남단에서 1호선 안양 석수역까지이나 3차 걷기 때 3km 정도 더 발품 판 덕에 집 가까운 곳(한강과 안양천 합수점)에서 스타트할 수 있었다. 잠시잠깐 한강과 눈맞춤 한 후 곧바로 안양천변길로 접어들었다.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쾌청하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 흩날리는 꽃가루가 아주 성가시다. 풀섶에 눈처럼 내려앉은 꽃가루가 걸음을 쫓아 달려든다. 꽃가루가 날리는 철이면 안과가 문전성시다. 세상사 동전의 양면과 같다.

'둘레'란 테두리나 바깥 언저리를 말한다. '서울둘레길'이라면 당연히 서울의 모든 區를 싸안아야 한다. 그런데 서울둘레길에 강서구와 양천구는 둘레 바깥에 있다. 산과 천을 잇다 보니 안양천 뚝방을 따라 금을 그었을 걸로 짐작은 가나 강서구민 입장에선 못내 섭섭하다.

서울둘레길 전 코스 중 유일하게 평지로만 되어 있는 구간이다. 그래서 조금은 심심한 코스라고들 한다. 이 코스의 진면목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초봄엔 흐드러진 벚꽃이, 여름엔 뚝방의 짙푸른 녹음터널이, 가을엔 천변을 따라 웃자란 은빛 억새가 장관이다. 뚝방길을 걷다 지겨우면 중간 제방길도 좋다. 그도 아니면 천변길로 내려와 물속을 유영하는 잉어떼를 보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때는 구로공단과 안양공단에서 쏟아낸 오폐수로 인해 죽음의 하천으로 불리기도 했던 안양천이다. 지금은 무리지어 노니는 잉어떼와 물오리 그리고 징검다리에 걸터 앉아 냇물에 발을 담근 아이들 모습을 보니 오명을 벗은 게 맞다. 살아 숨쉬는 하천으로 탈바꿈 했다. 또하나 팁, 유일하게 야간 걷기 이용이 가능한 코스이기도 하다. 걷다가 지칠만하면 나무데크로 꾸며놓은 쉼터가, 尿氣를 느낄만 하면 깔끔한 화장실이 짜안~하고 나타난다. 각종 운동기구도 잘 갖춰져 있다.

뚝방길은 도보 전용이다. 가끔은 자전거가 올라오기도 해 넋놓고 걷다가 화들짝 놀라기도 여러번. 천변따라 잘 조성된 라이딩 전용로를 놔두고 왜 이곳으로 올라오는지 통 모르겠다. 그늘 때문인가? 오르내림이 없는 평지 길은 늘 고역이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기 때문이다. 발가락을 꼼지락 거려 가며 걸어보지만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둘레길 왼쪽(석수역 방향 기준)은 가산디지털단지, 예전 구로공단이다. 옛 구로공단은 1964년 수출산업공단으로 조성됐다. 1970년대 후반에는 근로자 11만명이 이곳에서 일했다. 이후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입주 기업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2000년대 들어 정부 주도로 IT 첨단 산업단지로 육성하면서 지금의 '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했다. 사실 이 곳은 소생이 호구(糊口)를 잇는 곳이라 아주 낯익다. 벚나무 사이로 빼곡하게 들어선 디지털단지 빌딩들을 보며 '상전벽해'를 떠올린다. 30여년 전 이곳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기에....

안양천 벚꽃길은 금천구청 인근까지 이어진다. 이른 봄이면 뚝방 산책로에는 약 900여 그루의 왕벚나무가 벚꽃을 피운다. 여의도 윤중로가 부럽지 않을만큼 장관이다. 금낭화, 할미꽃 등 우리나라 고유의 꽃으로 조성된 화단도 눈을 즐겁게 한다. 원추리, 갯버들, 꽃창포 등 다양한 수변식물 감상은 덤이다.
금천구청역에서 석수역으로 향하는 구간에는 장미화원이 조성되어 있다. 32종, 100만 송이 장미를 심어 놓았다는데 서울시내에 조성된 장미원 가운데 최대 규모란다. 정수리 위로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난다. 고가 아래는 그늘 쉼터다.

"당신의 뱃살은 안전하십니까?" 내 나이에 맞는 곳으로 몸을 구겨 넣어 보았으나 헛일이다. 나잇살이 가로막는다. 우회할 수밖에.

17.3km를 걸어 전철 1호선 안양 석수역 2번 출구, 스탬프 인증 포인트에 도착해 4일차 걷기를 마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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