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는 자신의 예술, 특히 조각 작품들로 19세기 근대사회가 20세기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유럽 한 복판에서 세계 1,2차 대전을 경험하면서 유럽 지식인들이 주도한 다양한 철학적인 시도들을 조각 작품이라는 가시적인 물질에 담아 대담하면서도 선명하게 제시하였다.

그는 1930년대 초현실주의 세례를 받아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중요한 주제들인 성, 집착, 그리고 정신적인 충격을 다양한 조각과 회화로 표현하였다. 1930년대 후반에는 당시 유럽 예술가들의 우상이었던 추상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버린다. 그는 예외적으로 다시 실제 대상을 흉내내는 표현하는 구상주의로 돌아와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하였다.

그의 관심은 시간이 인간의 시선을 왜곡하는 환영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간적인 거리를 실제적이며 물질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조각을 선택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조각의 대상으로 삼은 모델에서 느끼는 감각을 느끼기를 바란다. 특히 조각 작품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 최대한 왜소하고 가냘프게 제작하였다.

자코메티는 1940년대 후반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실제 장소에서 재현하는 방법을 두 가지 사상을 통해 발견하였다. ‘현상학’과 ‘실존주의 철학’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자의식’, ‘타인’, ‘허무’와 같은 철학적인 담론을 현대인들의 우울, 소외, 고독으로 표현하였다.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가 유럽과 미국을 휩쓸었지만, 자코메티는 여전히 구상주의 조각으로 현대인의 딜레마를 강력하게 표현하는데 성공한다. 누구와 소통하려는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미로와 같은 현대인의 삶을 자신의 조각에 담은 것이다. 나는 이 연재에서 1930년대 후반 자코메티가 초현실주의로부터 탈출한 이후부터 그가 사망한 1960년대까지 대표적인 조각 작품들을 다루면서, 현대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한국경제신문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외로움’

현대인들은 외롭다. 손안의 핸드폰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우리의 관심을 유발할 만한 뉴스로 우리의 눈과 귀를 엄습한다. 우리는 왼손으로 핸드폰을 잘 볼 수 있도록 눈 가까이 올리고, 오른 손가락으로 그 매력적인 뉴스에 탐닉하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스크롤을 내린다. 그러면 우리는 한 순간에 그 화면 속으로 들어가 한 참 동안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러나 나는 외롭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나의 모습을 찾지 못할 때, 그리고 그것을 향해 지금 이 순간을 직시하고 장악하지 못할 때, 나는 외롭다. ‘외롭다’는 감정은 누군가의 존재를 갈망하지만, 그것이 나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생긴다. 핸드폰은 현대인의 빈 공간에 들어와 외로움을 달래주는 노예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안주인 노릇을 한다.

현대인들은 핸드폰의 노예다. 핸드폰이 전달해주는 정보는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편집하여 정리한 내용이다.
현대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괴물인 핸드폰과의 싸움에서 완패를 당했다. 우리는 핸드폰에 중독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핸드폰이 전달해주는 정보를 통해 세상을 본다.

핸드폰은 21세기의 ‘손도끼’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약 300만년 전에 길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돌을 주어다 자신의 손에 딱 들어오는 무기를 만들면서 ‘만물의 영장’이 되기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현대인들은 핸드폰에서 무슨 정보든지 캐낼 수 있다. 이 편리함이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실(失)이 되었다. 핸드폰은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해 주는 문명의 이기기면서 동시에 그들을 자신의 정보로 시야를 가리는 색안경(色眼鏡)이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혹은 그 대상 안으로 들어가 대상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킨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신이 관찰하는 대상을 오랫동안 관조하여, 그 대상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생각하려는 ‘거울신경계’를 뇌 속에 장착하였다. 창의성의 작동원리인 거울신경계가 마비되어, 누군가가 편집한 정보만 편식하는 인간이 되었다.

‘고독’(孤獨)

나는 나의 두 발로 땅을 디디고 굳건히 서서 고개를 치켜들고 내가 가고 싶은 장소를 정해 뚜벅뚜벅 가고 싶다. 나는 두 눈으로 내가 확인한 대상을 이해할 것이다. 내가 지하철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들, 내가 탐독하는 성현들을 지혜가 담겨있는 책들, 내가 손을 통해 찾아가 두 눈으로 읽는 신문 사설들, 내 마당에 자리 잡고 시시각각으로 변신하는 능수 벚나무...이 모든 것이 나를 변화시키는 나의 스승이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혼미하게 만드는 정보는 내 기억에 남지 않고 흘러가 버린다. 내가 간절히 원해 정색을 하고 관조하는 대상에 몰입하는 훈련을 ‘고독’(孤獨)이라고 부른다.

유대인들의 1세기 경전인 <피크레 아보트>(‘선조들의 어록’)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히브리어로 표현하면 이렇다. “아쩨이후 하캄? 하 로메드 미콜 아담.” 이 구절을 번역하면 이렇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매일 매일을 자신을 위한 배움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한 마음가짐이 바로 ‘고독’이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침착하게 있는 그대로 보려는 마음이다. 고독은 우리가 필요한 최고의 선물이자 사치다. 자코메티는 아주 왜소한 작품에서 이 고독을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왜소’

자코메티는 어려서부터 왜소한 물체를 조각으로 만들었다 다시 해체하는 작업에 중독되어있었다. 그는 그러한 편집증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제작한 10cm 이하 조그만 조각상은 수백 개 혹은 수천 개이지만 지금은 20여개만 남았다. 그는 자신이 재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규정하는 공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일한 대상이지만, 거리에 의해 크기가 달라지고 조명에 따라 보이는 양도 달라진다. 자코메티는 자신이 재현하려는 대상을 오래보면 볼수록, 그 대상이 점점 작아지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대상을 보면 볼수록 그 대상이 점점 작아지고 마침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 대상의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대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했다. 무엇이 자코메티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다가갈 수 없는 여인들’

자코메티의 이런 시선은 그의 반복적으로 실패한 여성관에서 생겼다. 그는 어려서부터 여성에 관해 이중적인 심리를 지녔다. 그는 매력적인 여성들에 누구보다도 몰입하여 끌렸지만, 그들로부터 버림을 받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그가 이런 거리를 두는 심리가 바로 왜소한 조각상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당대 최초의 모델이며 화가였던 이사벨 델머 (Isabel Delmer) 와 소냐 모세 (Sonia Mossée)는 자코메티에게 매력이자 타부였다. 이사벨 델머는 자코메티 뿐만 아니라 파블로 피카소와 프란시스 베이컨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불어넣은 아름다운 모델이었다. 자코메티는 유부녀인 이사벨 델머를 ‘여자친구’라고 부르면서 애인관계를 유지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하였다. 그는 이사벨에 대한 기억을 통해 왜소한 조각을 만든 순간을 이렇게 기술한다. “내 조각 작품들은 공포스럽게 왜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여인(이사벨)이 파리의 한 거리인 생 미셀 (Saint Michel) 거리를 어느 날 밤에 지나가는 것을 본 기억을 통해 작품을 만들기 원했습니다. 나는 80cm 정도 크기로 그녀를 조각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사라져 조각 작품이 점점 작아져 1cm정도 크기가 되었습니다. 겨우 엄지크기로 더 이상 조각이 아니었습니다.” 이사벨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부인이든지 애인이었기 때문에, 자코메티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머나먼 존재였다.

자코메티의 친구였던 피카소는 자코메티가 늘씬하고 아름다운 유대여성 소냐 모세에게서 왜소한 조각의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냐는 종종 자코메티와 피카소의 아지트인 카페 드 플로르 (Café de Flore)에서 어울렸다. 소냐는 동성연애자로 자코메티와 연인이 될 수 없었다. 소냐는 파리의 거리에서 양팔을 흔들리지 않게 몸에 붙이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모델처럼 걸었다. 자코메티는 소냐의 그런 풍채가 마치 자신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았던 파라오 무덤의 부장품 조각들인 이집트 시녀들의 조각상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이 모습은 자코메티 여성조각의 원형이 되었다.

 

사진은 '이집트 시녀' / 이 나체 소녀는 목걸이, 팔찌, 그리고 가발을 착용했다. 양다리를 붙이고 두 손은 그 다리에 바싹 붙였다 / 기원전 2040-1786년경, 하마상어, 6.4 x 1.5cm / 미국 월터예술박물관 소장

‘왜소한 조각’

자코메티가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중반에 창작한 대부분의 왜소한 조각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들의 넓은 골반, 둥그런 배는 고대 이집트 조각들과 매우 유사하다. 이집트 조각들은 죽은 자들을 위한 부장품이거나 이집트 <사자의 서>에 등장하는 죽은 자의 영혼이 저승세계로 안전하게 여행하기 위해 목걸이로 만들었던 부적과 유사하다. 자코메티가 이 작은 조각상들은 만들었다가 부수는 일을 반복한 심오한 이유가 있다. 그가 이사벨이나 소냐와의 관계가 소원해져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동생 오틸라를 잃은 그 허탈감에 대한 표현이다. 자코메티가 1937년에 제작한 <아주 왜소한 형상>이다. 이 조그만 형상이 거대한 방형대좌(方形臺座)에 접착되어있다. 이 조각은 블랙홀이다. 아주 작기 때문에 이것을 관찰하는 나의 시선을 한 순간에 빨아들인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우주는 티끌의 집합이고 위대함은 사소함의 연결이다. 팔을 몸에 붙이고 발을 땅에 굳건히 파묻고 정면을 응시한다. 고독해 보이지만 당당한 여인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응시하고 있습니까?”

사진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매우 작은 입상' /  1937~39년경, 벽토, 4.5 x 3 x 3.8 cm / 파리 자코메티 재단 제공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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