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신문에 이런 기사가 떳다.

“먼 길을 가야 하는 여행을 가장 편하고 쉽게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사를 본 수많은 독자들이 답변을 해왔다.

그 중 신문사가 선택한 답변은 …

“친구와 함께 간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다.



지금은 추억이 된 80년대 통키타 그룹<해바라기>의 노래 중에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곡이 있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당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던 노래다. 정치적 격변기에서 희망과 염원이 가득했던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자신을 보지 말고 상대를 바라보고, 그들과 함께 사랑하고,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인지 2집에서 힛트쳤던 노래들의 제목들은 ‘너’, ‘모두가 사랑이에요’, ‘이제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등 이었다.



“이리 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길을 가더라도, 아무리 찾고 둘러봐도 그대보다 더 좋은 건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 그대는 어떤 사람일까?

“그댄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바로 ‘행복’을 주는 사람이다.

우린 행복을 원한다. 아무리 길거리에서 핀 클로버 잎을 보면서 4개의 잎을 가진 ‘행운의 클로버’를 찾으려 하더라도 우린 행복을 원한다. 그런데 지천에 깔린 3개의 잎을 가진 클로버의 의미가 ‘행복’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가? 내 곁에 있는 파랑새를 보지 못하고 멀리 파랑새를 찾으려 떠나려 하고 있진 않는가?



왜 내 주변에 있는 ‘행복의 파랑새’를 보지 못할까? 그건 아마도 ‘욕심’때문이 아닐까?

욕심이 많으면 사소한 행복을 놓치기 쉽다.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하고 살피고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욕심이 많은걸 가지고 나쁘다고 말하는건 아니다. 욕심이 많다고 문제가 되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욕심에 따른 책임을 질 줄 모르고 좀 더 편한 방법을 찾으려는 우둔한 나태함이 문제다. 이루려는 열정과 노력 그리고 끈기만이 당신의 욕심을 이뤄나가게 한다. 불면증의 원인은 ‘욕심>실천’일 경우 생긴다. 자신이 하는 것보다 욕심이 클 때나 이루지 못할 것을 걱정할때 우리는 그 밤을 편안히 보내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편안한 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적절하게 욕심을 조정하거나 혹은 열정적 행동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이번 겨울에는 기승을 부린다고 매스컴에서 불안을 획책한다. 경제가 안정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추워하는 분들이 많다. 사람들은 조그만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감정을 다치기 일쑤다. 겨울이라는 춥고 외로운 계절을 지혜롭게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혹시 겨울이 오행에서 ‘수(水)’를 나타내고 있는걸 알고 있는가? 예로부터 ‘물’이란 ‘지혜’와 빗대어 사용된 은유적 표현이 많다. “물처럼 흘러가라. 고이면 썩는다. 앞을 가로막으면 서서히 채워 넘어가라” 등등… 생각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면 겨울은 ‘생각의 계절’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동안 읽어 온 책들을 내면화 하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추석은 가을이다. 풍요로운 가을이 외로움과 차가움을 나타내는 겨울과 가깝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자칫 오만하고 나태해지기 쉬운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로움을 갖추기 바란다. 늘 생각하고 고민하길 바란다. 넓게 생각하고, 깊게 생각하면서 다양한 생각과 시각을 견주하면서 통찰할 수 있기 바란다. 그리고 그런 걸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꼭 1명이상 두기 바란다.

인생… 뭐 별거 있을까? 신(神)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즐기고 가면 될걸 가지구 너무 많은 고민과 욕심에 치우쳐 살아가려는건 아닐까? 아님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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