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던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셨다.
6개월의 병상생활에서 끝내 일어서지 못하시고,, 그분이 그려했던 하늘나라로 가신것이다.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임백천씨는 자신이 신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신이 있다면 그분과 같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했다. 실제로 살아생전에 자신보다는 남을 생각하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려 하셨던 그 분은 늘 따스했고, 겸손했던 분이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한 종교의 지도자이기에 앞서 가난한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 그리고 버려진 사람들의 애환을 살펴 온 사회인이었으며, 옳은길을 가다가 정치적으로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거인이었다.

거인은 살아생전에도 눈에 뜨이지만 돌아가시면서 더 큰 교훈을 주는것 같다.
한 예로, 그 분은 사회적, 종교적으로 존경을 받으시면서 말씀에 대한 영향력도 대단했지만, 살아생전에는 장기기증과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어려웠다.
그런데 죽음과 함께 사람들은 장기기증과 입양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마도 유리관에 누워계신 그분의 안구가 다른 사람에게 기증되기 위해 이미 수술을 마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은 자신들이 남들에게 죽어서라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줬다.

추기경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늘 자애로웠던 분이셨다고 한다. 그러나 남들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쩌면 인간적으로 느낀 괴로움과 답답함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된다.그러나 늘 넉넉하다고 생각하는 그분은 남을 남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가족과 형제로 바라보면서 아낌없이 주려고 시도했던 분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정치, 국경과 나이를 초월해서 추모의 행렬이 끝나지 않을 정도로 긴 줄을 만들고 있는것 아닐까?

그런데…
만약 내가 죽은뒤에 나의 죽음을 정말로 애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이웃집 개도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은 죽은 후에 비로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당신이 죽은 다음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추모할까?
추모하면서 당신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리고 당신이 죽은 후 당신의 가족을 당신만큼은 안되더라도 관심갖고 보살펴 줄 사람은 얼마나 있는가?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을 바라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삶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삶인가?
그렇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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