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不惑)’의 나이가 되면 어떤것에도 ‘혹(或)’하지 않게 된다. 이는 40이 되면 자신의 가치관이 정립되기 때문에 ‘혹’ 할 수 있는 어떤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40이란 나이가 돼서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무지하게 흔들린다. 여기서 하는 말도 맞고, 저기서 하는 말도 맞는것 같다. 가치관은 흔들리고, 정체성 또한 모호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만 그럴까?” 라는 생각에 강의를 하면서 다른 분들의 의견을 수렴해보니 모두 자신의 이야기라고 수긍한다. 어떤 분은 오히려 흔들리는 ’40대들의 비망록’이라도 써야 한다고 한다.

왜 40의 나이에도 ‘불혹’을 이루지 못할까?
그런데, 꼭 ‘불혹’을 이뤄야 할까?
직장에서 40이란 나이는 가장 왕성하게 일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기다.
여러가지를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작은 확률이라도 쉽게 넘기지 못한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우물쭈물 흔들리고 모습만 보여진다.
기왕 40대가 흔들리는 나이라면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할께 아니라 생각을 바꿔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면 안될까?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나이가 들면서 우린 점점 보수적이 되고 새로운것에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신세대의 빠른 템포의 노래에 괜히 인상짓고, “이나이에 뭘 해?” 라고 말하기도 한다.

세상에 대한 관심조차 적어지고, 새로운 것엔 고개를 저어버린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나이는 잊어버려야 한다.



그래서 40대임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많은것에 유혹을 당해 보길 권한다.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도록 하자.



기존의 생각을 뒤집어 보고, 남들이 하지 않은 길을 가 보는 용기도 갖추자.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하는 것도 한 번 해보자.


한가지만 생각하기 보다 여러가지를 생각하자.
‘다름’을 수용하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생각’의 유연성을 가지자.


말코니는 무선기의 출력을 높이면 아주 먼 곳까지 무선 전파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모두 비웃었다. 전파는 직진하는 성질을 갖고 있고, 지구가 둥글다는 상식이 있는 사람은 모두 비웃을 수 밖에 없는 생각 이었다. 그러나 말코니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결구 강력한 송신기와 수신기를 개발했고 성공해 냈다. 대기권에 전리층이 있어서 전파를 반사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말코니도 대기권 전리층의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했다면 그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찾아서 새롭게 도전해 보자. 40대가 도전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있게 ‘유혹(有或)’에 빠질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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