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학계에 최근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아래서 구조개혁을 진두지휘했던 다케나카 헤이조 전 경제재정상(현 게이오대 교수)과 함께 일본내 신자유주의자의 대표를 자임해온 나카타니 이와오 히토츠바시 명예교수가 ‘참회의 책’을 발간했기 때문이다.
서명은 ‘자본주의는 왜 자멸했을까’. 그는 작년 말 출간한 책에서 구조개혁의 선봉을 맡았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했다.
신자유주의가 학술적이나,논리적으로 ‘옳았다’기 보다는 미국이나 유럽의 엘리트 입맛에 맞는 이론이라 유행했을지도 모른다고 술회했다.
신자유주의 사상인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공공의 이익보다 우선한다”는 논리가 틀리지 않는다 해도,사회격차 확대를 정당화하는 ‘툴(도구)’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2007년 상반기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의 원인과 전망을 분석한 서적들이 화제다.
존 갤브레이스가 쓴 ‘대폭락 1929’ 등 대공황을 다룬 책들은 식자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투자자들도 대공황기의 증시동향에 주목하고 있다.
1929년 10월24일 뉴욕증시는 ‘암흑의 목요일’로 역사에 기록됐다.1929년부터 33년 사이에 주가는 최고점 대비 89.2% 하락했고,미 경제는 대공황에 돌입했다.주가가 바닥을 탈출하기까지 2년9개월이 걸렸다.
새해들어 각국 정부나 업계의 최대 관심은 대공황에 비견되는 현 경기침체가 언제쯤 회복될지에 쏠리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 살아날 것이란 기대섞인 전망이 주류지만 장기불황에 빠질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달 초 “미 경제가 일본이 1990년대 경험한 디플레이션의 덫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 월가의 탐욕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대공황기처럼 각국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다시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규모가 축소되고 있다는 점.세계 3대 경제축인 미국 일본 유럽이 마이너스 성장에 진입했고,자동차 슬림형TV 휴대전화 등 주요 소비재시장이 쪼그라들었다.
시장이 축소되면 기업들은 생산을 줄이게 되고,결과적으로 고용과 소득 감소도 불가피해 진다.해외시장 의존도가 큰 한국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당장 기업들의 부도가 줄을 잇고 있고,실업 증가로 사회 혼란도 우려된다.
물론 지금의 경제위기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힘으로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도 많지 않다.그렇다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다.
최선의 방안은 현실로 다가온 축소경제시대에 적응하는 길이다.정부,기업,가계 모두 축소된 시장에 맞춰 새롭게 경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성장기에 잉태됐던 버블(거품)을 걷어내는 일도 필요하다.
나카타니 교수는 저서에서 “그래도 악몽의 시대는 끝날 것”이라며 “2009년을 새로운 자본주의 출발의 해로 삼아 ‘인간의,인간에의한,인간을 위한 경제사회’를 만들자”고 글을 맺었다.
요사노 가오루 일본 경제재정상은 19일 “일본이 번영하려면 경기침체기에 사회약자들을 도울 수 있도록 ‘마음이 따뜻한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엊그제 출범한 새 경제팀에 기대를 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