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했다. 기찻길 옆 벚꽃은 바람에 파도가 일듯 꽃잎을 날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잘 안 풀릴 때는 한자리에서 오래 고민하지 말고 아예 푹 자라는 말이 있다. 자고 일어나면 마치 컴퓨터가 새롭게 부팅을 하듯 지난 잔상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새로운 시작의 전열을 가다듬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봄나들이가 사치가 될 수 있겠지만, 앞으로 진군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면서 전열을 가다듬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연은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상상력, 창의력 발현의 최고 보고다. 4월은 책을 접하기 좋은 계절이고, 23일은 ‘책의 날’이다. 오늘은 필자를 현재 위치에 있게 한 책의 역할에 대해 들려드린다.




청소년기는 책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정체성을 가지고 바라본 때는 아니었고, 대학 때부터 약 15년 정도 용맹정진 책을 접했다. 이후 현재까지는 그동안 나아갔으니 물러서는 관조의 시기다. 중고교 시절 집안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부모님께서 책에 관대하셔서 꽤 많은 책을 사 주셨다. 중3 겨울 방학 때는 <삼국지>를 하루 3권 독파하기도 했다. 그 연유 때문에 인생 최초 스스로 의지에 의해 구입한 책이 <손자병법>이다. 팔괘진 등 제갈공명이 선보인 진법(陣法)들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어른이 되면 꼭 병법가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병법가를 현재의 역할로 치환하면 전략 또는 기획부문의 일 정도인데, 현재 필자가 하고 있는 일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너무 신났다. 학교도서관에서 공짜로 원하는 만큼 책을 볼 수 있어서였다. 대학시절이 독서역사에서 최고 절정기인데, 1학년 때는 하루 5권정도 읽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2~3권, 방과 후 읽기 위해 교외반출 2~3권을 신청했다. 대학진학 후 10년 동안 약 3천권 정도 책을 본 것 같다. 대학에서의 본격적인 책 읽기는 ‘대학인’이라는 정체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당시 입학예정자를 대상으로 면접시험을 치렀는데 백지에 ‘자신이 왜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유를 적어내는 과제였다. 당시 주변에서 익히 들었던 ‘대학은 진리탐구의 장’이라는 문구를 기억하고 거기에 맞춰 장문의 글을 제출했다. 이것이 ‘진리탐구’가 필자의 평생 화두가 된 계기다.




이 때 부터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가 시작되었다. 대학생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대학(university)인은 우주(universe)의 마음을 가슴에 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주장은 성인(聖人)의 잠언 또는 당시 서적에서 배운 바탕위에서 표출된 것이 아니라, 내면 심층기저의 울림이 전한 소리였다. 필자는 스스로 설정한 이 명제를 굳게 믿고 실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결론으로 ‘진리탐구는 우주를 가슴에 담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우주의 깨달음을 얻는 관문으로 ‘책’을 택했다.




우선 진리로 가는 가장 정확한 길은 ‘종교와 철학’이라고 판단하고, 세계 6대 고등종교인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유교, 도교’의 경전을 비롯한 관련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힌두교 경전중의 하나인 <바가바드기타>를 그 때 처음 접했다. 더불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인간의 삶을 둘러싼 모든 영역에 대한 탐구도 진리탐구의 과정이라 인식하고 병행했다. 최근 <몰입> 책이 많은 관심을 받는데, 당시 1년간의 몰입이 필자의 평생 자양분과 에너지원이 되었다.




진리탐구가 진척이 되지 않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진리가 승리하는 지, 내가 이기는 지’ 결기를 품고 진검승부를 하게 되었다. 수업은 기본만 하고 나머지 시간을 도를 깨우치려는 선승과 같이 용맹정진을 했다. 너무 힘들었다. 앞이 보이기는커녕 문자를 머리에 채워갈 수록 실타래는 더욱 꼬이고 엉키기만 했다. 20대 초반 나이의 질풍노도 시기에는 애초에 벅찬 일이었다.




이 때 한 가닥 빛이 돼준 인물이 있는데 도교의 시조 ‘노자’와 근대 한국 선종의 가장 뛰어난 선사인 ‘경허’였다. 노자 <도덕경> 첫 구절인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의 화두는 아직 진행 중이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의 경구 의미는 필자로 하여금 내면의 세계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침묵과 경청의 생활습관을 가져다주었다. 생소한 표현으로는 ‘말이 안으로 들어갔다’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오랜 수행으로 침묵으로 말을 전할 수 있는 경지도 알게 되었다.




경허 선사의 무애자유한 기행은 기존 종교의 고정관념과 편협함을 벗어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특히 그의 탁주 기행은 유명한데, 어느 겨울 제자인 만공과 함께 단청불사를 위한 시주를 마치고 절로 돌아가야 하는데 경허는 읍내로 발길을 돌렸다. 주막에 들려 스승이 바쁘게 술을 비우니 만공이 이제 얼굴이 온통 붉게 되었으니 그만 마시라고 간청했다. 경허는 그 말을 듣고 이제 단청불사가 제대로 됐으니 시주금으로 술값을 치루라고 했다. 만공이 어이없어 하자 경허는 “내 얼굴이 술기운으로 발갛게 되었으니 단청공사는 이미 다 됐거늘 무슨 단청공사가 필요하단 말이냐.”고 일갈했다. 겨울 한기와 취기로 인해 경허의 안색이 붉그락 푸르락 한 것을 단청에 비유한 것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사랑하는 막걸리에 대한 애호도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광영(狂靈)’이란 호(號)도 만들었다. 이후 ‘노자’와 ‘경허‘는 마음속의 평생스승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용맹정진은 1년을 끌면서 마치게 되었다. 방학 때마다 포도과수원을 하는 외삼촌댁에 농사일을 거들기 위해 찾아가곤 했는데 어느 날 이른 아침 희미한 안개가 흐르고 대문 밖 마당을 거니는데 순간 활짝 핀 나팔꽃을 보면서 퍼뜩 깨달음이 전해왔다. “해가 뜨고 지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내 눈이 미혹해서 눈앞의 진리를 알지 못했구나.”라는 울림이 크게 가슴을 때렸다. 당시 책 안의 세계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했으니 일상에 산재한 진리를 알지 못했던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대학시절 최고의 목표인 ‘도서관 책 모두 읽기 프로젝트’는 거의 완수했다.




졸업 후 대기업과 벤처기업 등 샐러리맨 경험을 15년 정도 했다. 주로 전에 없던 새로운 일들을 많이 추진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서 과제에 대한 해법이 술술 풀리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나중에 김용옥 선생의 책을 접하면서 그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는데 그 내용은 ‘책을 많이 접해 깨달음이 경험하거나, 학문에 몰두해 경지에 오른 경우 그런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책이 주는 위력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 대학시절 학업에 전념하지 않고 책에 몰두한 것이 내심 불안하기도 했지만, 창의적인 업무성과를 만들어주고 필자를 크게 성장시켜준 책에 늘 감사하고 있다.




샐러리맨 생활을 정리하고 나이 마흔에 다시 세상에 뛰어 들었다. 선하며 타인도 이롭게 하는 비즈니스를 펼치려고 하는데 이런 다짐 역시 책 속의 인생 선배들에게 배운 것이다. 이제는 책 뿐 만 아니라 CEO, 명사들의 만남에서 인생의 지혜를 얻기도 한다, 얼마 전 필자가 주관하는 ‘저자와의 만찬’ 행사에서 신간 <촐라체>의 박범신 작가를 만났다. 자본주의의 조작된 욕망과 기호를 뛰어넘어 자신의 본질을 찾으라는 말을 전하면서, 인생은 때로 따뜻한 보료를 벗어나 가시방석에 자신을 앉히는 서늘한 정신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수 천 년 전 성인이나 책 속의 선배들은 한 목소리로 ‘인생은 자신의 본질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경영의 세계 역시 본질의 깨달음을 통해 핵심가치와 성장 동력을 찾는 여정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분기가 시작되는 4월에 드리고 싶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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