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는 용광로 맛을 봐야 야물어지듯 소생의 삭신은 독한 소백의 칼바람을 쐬야 비로소 면역력이 상승한다. 매년 잊지 않고 혹한기에 소백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년 이맘때 눈보라 맞으며 비로봉 정상에 섰으나 단 30초의 머무름을 허락치 않고 등을 떠밀었다. 그만큼 칼바람은 혹독하고 매몰차다. 그러나 이것이 겨울 소백의 마력(魔力)이자 매력(魅力)인데 어쩌겠는가.

온 매스컴이 앞다퉈 최강한파가 절정에 이를 것이라는 지난 토요일(27일), 칼바람과 맞장 뜰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이번 산행은 출향해 수도권에 둥지를 틀고 사는 소백산 아랫말 중딩 선후배들과 함께 했다.

07시 30분, 서울을 벗어난 버스는 막힘없이 내달려 09:50분 충북 단양 소백산국립공원 천동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멈춰섰다. 이미 여러대 버스가 산꾼들을 토해 내고 있었다. 스패츠를 차고 아이젠을 걸었다. 최강 한파에 지레 겁 먹었나? 내남없이 복장이 둔중하다. 소백준령을 넘은 아침햇살이 얼어붙은 길바닥에 반사되어 눈부시다. 바닥 얼음장을 찍는 아이젠소리를 벗삼아 소백의 너른 품으로 기어들었다.

"추위 단도리 단디 하이소, 지금 꼭두배기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로 억쑤로 춥다이더"
탐방로 입구에서 만난 국립공원 관리직원이 안내인지 엄포인지 툭 던진다. 단언컨대 모두들 북극에 내놓아도 안 얼어죽을 복장이다.

소백산 비로봉을 오르는 천동리 코스는 대체로 완만한 편이다. 흡사 한라산 오르는 성판악 코스를 닮았다. 길도 넓어 교행도 편하다. 흑갈색 낙엽송 사이로 난 순백의 길을 따라 걸으면 잔가지 사이로 드러난 파란하늘과 길의 끝에서 만날 것만 같다.

천동쉼터까지 4.5km구간은 대체로 유순하다. 양지바른 곳에 자그맣게 자리한 천동쉼터에서 배낭을 내렸다. 이제 곧 만나게 될 소백능선의 칼바람에 대비, 호흡을 고르고 복장을 갖추는 곳이기도 하다. 보온통에 담아온 뜨뜻미지근한 물로 누룽지를 불리는데 영 신통치 않다. 옆 식탁의 팔팔 끓는 물이 부러웠다. 그런데 말이다. 대담하게 국립공원 쉼터에서 보란듯 불을 피우는데 "뭘 몰라서일까? 아니면 똥배짱일까?" 그때다.

"국립공원 내에서 취사 및 화기 사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자연공원법 제27조 제1항 제1호에 의거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습니다. 신분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어디선가 나타난 국립공원 관리직원이 얄짤없이 과태료 고지서를 발부하고 있었다. 그랬다. 과태료 넣은 엄청 비싼 라면 국물보다 미지근한 누룽지가 이날따라 훨씬 달달했다.

쉼터를 벗어나자 길은 조금씩 가팔라졌다. 구상나무 군락을 지나면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달력 그림이다" "크리스마스 카드다" 아름다운 풍경과 예쁜 그림이 인쇄된 달력과 크리스마스 카드 그리고 연하엽서를 주고받던 시절의 감탄사라 새삼스럽다.

나무들이 키를 낮췄다. 사방이 활짝 열리며 순백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고사목이 있는 포토존에 이르러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근육질의 첩첩준령이 물결치듯 일렁인다. 일망무제에 시선을 거두기가 아쉽지만 움직여야 한다. 체온이 내려가면서 금새 손가락 끝이 시려 오고 몸이 으슬으슬 해오기 때문이다.

천동쉼터에서 1.7km, 드디어 백두대간길에 합류했다 천동삼거리다. 왼쪽은 비로봉(0.6km), 오른쪽은 연화봉 대피소와 죽령으로 이어지는 소백주능선이다. 천동삼거리 바위벼랑에 올라 동편 산야를 굽어보니 나고자란 고향말이 아스라이 눈에 든다. 산천은 의구한데 소생은...

여기서부터 비로봉까지는 온 몸을 칼바람에 오롯이 맡겨야 한다. 고향 산 찾아 온 것을 소백산신께서 눈치 챘나?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고무데크 길을 따라 오르는데 다행히도 볼살이 얼얼할 정도다. 익히 알고 있던 그 칼바람이 아니다.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해발 1,439m)에 섰다. 30초 이상의 머무름을 허락치 않던 작년과는 달리 칼바람의 심술은 덜했다. 그래도 추위만큼은 역시나 독했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쫓기듯 셀카에 담은 소생의 몰골에서 추위의 정도를 감 잡으시라.

정상석 인증샷을 위해 줄지어 선 산꾼들의 인내에 경의를 표하며 소생은 비켜나 셀카로 슬쩍한 뒤 영주 방향 산야와 주목군락 감시초소 너머로 아득히 보이는 산군을 조망하고서 서둘러 국망봉 방향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비로봉에서 어의곡리 갈림길까지는 짧지만 삭풍을 맞받으며 걸어야 한다. 안구건조증 탓에 눈물이 줄줄 샌다. 콧물도 그렁거린다. 턱밑 옷깃은 뻣뻣하게 얼어 연신 목덜미를 긁는다. 하지만 혹독한 추위 앞에선 어찌할 수가 없다. 양지바른 곳이 나와야 눈물도 콧물도 훔치고 옷깃도 추스를 여력이 생길런지.

비로봉에서 본 국망봉(1,421m)은 만만해 보였다. 실제 빤히 건너다 보인다. 거리는 3.1km이다. 그러나 심설 보행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능선이라지만 가파른 오르내림이 반복되는데다가 허벅지까지 쌓인 어마 무시한 눈을 빡세게 헤쳐야 한다. 두발짝 딛고 오르면 한발짝 미끄러져 내린다. 체력 소모가 평시보다 족히 두세배다.
삭신은 고되고 걸음은 무거워도 마음만큼은 새털처럼 가볍다. 산을 찾게되는 이유다.

천신만고 끝에 초암사 갈림길에 닿았다. 국망봉을 300m 앞둔 지점이다. 짧은 겨울 해는 이미 많이 기울어 하얀 눈밭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오른쪽 초암사 방향으로 내려서면 하산길이다. 타고 온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배점주차장까진 무려 7.5km나 된다. 곧장 하산해도 날머리까진 어둑해야 닿을 거리다. 아쉽지만 국망봉은 포기하고 서둘러 하산하기로 입을 모았다.

 

 

충북 단양 천동리(10:00)에서 산행을 시작, 비로봉>국망봉 삼거리>초암사>배점주차장까지 17.6km를 걸어 어둑해진 18시, 경북 단산면 배점리에서 산행을 마무리했다. 행동식 하느라 30분 멈춘 것 빼곤 쉼없이 걸었는데도 일곱시간 반이나 소요되었다. 특히 비로봉에서 국망봉에 이르는 구간, 허벅지까지 쌓인 눈고랑을 헤치느라 걸음은 힘들고 더뎌 그야말 날고생 제대로 했다. 그렇지만 최강한파를 뚫고 영접한 소백산은 이 모든걸 잊게할만큼 가슴 벅찬 풍광을 내게 안겨 주었으니...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