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 여자 7명이 어렵게 한자리에 모였다. 최근 싱글이 된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축하라고 하니 다소 이상할 것이다. 싱글 선언을 한 친구에게 친구 6명은 위로를 잠시 뒤로 접었다. 한 두 가지 사연을 가지고 내린 결정이 16년 걸렸을까? 16년이라는 세월을 감히 알지도 못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보냈을까? 이미 이혼을 한 친구에게 위로는 마음에 간직하고, 싱글이 된 것을 축하(?)했다.


모 경제지에 따르면 지난 해 11월 누적 출생아 수 33만3000명․ 누적 혼인 건수 23만699건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1년 전보다 11.2%가 감소된 셈이다. 결혼 자체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비혼(非婚)자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중요한 트렌드가 되고 있다. ‘비혼식’과 ‘싱글웨딩’ 행사도 늘고 있다고 한다. 계기를 물으면 “딱히 계기라고 할 만한 게 없어요. ‘어떻게 하면 자신을 아끼면서 즐겁게 늙어갈 수 있을까’ 혼자가 둘보다 편해서 비혼을 결심했어요.”라고 한다.


이날 자칭 현모양처인 한 친구는 싱글된 친구를 부러워하며 “나는 졸혼이 소원이야~”라고 했다. ‘결혼(婚)을 졸업(卒)한다.’는 뜻으로 부부가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각자 자유롭게 사는 생활방식을 말한다.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을 내면서 알려졌다. 하나가 되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산다는 건 상상 속 ‘로망’인가 싶다. 심지어 주례사에도 ‘검은 머리 파뿌리’라는 말을 넣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주 경향신문에 나온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비혼인 김 씨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젊은 시절 몇 번의 기회는 있었지만 인연이 닿질 않았다. 홀로 지내던 어머니가 치매판정을 받았다. 누군가 ‘붙박이’로 어머니를 맡아야 했다. “한사람이 희생하면 집안이 편하다”고 김 씨가 말했다. 그 ‘한사람’은 비혼인 딸 김 씨였다. 빠르게 진행된 고령화와 비혼화의 교착점이다. ‘화려한 싱글’이미지 속 숨겨진 얼굴이다.

택시기사가 들려준 이야기다. “택시 타서 붙어 앉아 웃으면 부부 아닙니다. 각자 창 밖 보거나 말 안하면 부부 맞습니다.”웃었다. 정답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매일 보고 산다. 상대 습관을 확인한다. 불편함 투성이다. 본인 탓도 있고, 상대 탓도 있다. 이거 피하면 저거, 저거 피하면 이게 있으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결론은 혼자도 편하지 않고, 둘도 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혼 생활이든, 결혼 생활이든, 이혼 생활이든 인생 여정에서 선택은 최선이었다. 선택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를 만드는 것은 선택 후 ‘후회를 줄이며 열심히 살고 있느냐’에 있다. 최선의 선택일 지라도 감당해야 할 몫이란 게 있다. 친구 7명은 저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 우여곡절> 이란 여정을 가고 있었다.


싱글선언을 한 친구에게 축하를 해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름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지지와 앞으로 <후회를 줄이며 살아야 할 인생>을 위해서 였다.

윤재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