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어제 홈피에 접속해 심각한 고민을 두서없이, 긴 장문을 썼는데 내용이 흔적 없이 날아가 버리고 포기했는데, 오늘은 문자를 남길 수 있어 놀랐습니다. 남편과 갈등으로 몸까지 아픈, 이혼 문턱에 있는 50대입니다> 라는 문자가 왔다. 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내용이 사라져서 너무 허무하셨지요. 답답한 마음을 보내주세요. 두서없어도 돼요. 두서 있을 수 없어요. 지금은.”라고 답장을 보냈다. <따뜻하신 마음에 눈물이 계속 납니다.>라고 다시 온 문자에 ‘어느 글에서 눈물이 난다는 걸까? 평범하게 한 것 같은데’겸연쩍었다.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잠시 쉬기 위해 카페에 앉은 이미연에게 한인 여행객들이 찾아왔다. 그러던 중 여행객 가운데 한 중년 여성은 이미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꼭 행복하길 바란다. 제가 늘 마음으로 바랐다”고 진심어린 응원을 건넸다. 이에 이미연은 감정이 복받쳐 쏟아지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카메라를 피한 후, 한참 만에 돌아왔다. 쑥스러운 듯 환한 표정과 털털한 모습으로 말이다.

인생 귀인 큰삼촌. 큰삼촌 꿈은 책을 쓰는 작가였다. 큰삼촌 스무 살 때인 50년 전 ‘주간한국’에 큰삼촌이 쓴 < 가을소묘>란 시가 나온 적도 있었다. 외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꿈을 접고 인현동 인쇄소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 대리만족하며 살았다. 연극과를 졸업한 필자에게 첫 직장은 큰삼촌 인쇄소였다. 허황된 분칠 벗어내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24살 철없던 조카를 거둬준 첫 경영자였다.

필자는 28살이 되던 해 고생하는 큰삼촌을 돕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보다 나은 스스로가 되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큰삼촌이 “다방으로 잠깐 왔다 가라”고 했다. 테이블에 봉투 두 개가 있었다. “이건 니 월급이고, 또 이건 힘들 때 써. 사람 일이란 게 맘처럼 안 될 때가 더 많아. 고생했다.” 순간 눈물이 고여 얼굴을 들지 못했다.

“니네 집에서 니가 제일 나아. 너 밖에 없어, 성공할 사람.”

“늘 행복하길 바랬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카메라를 피한 이미연 마음과 같았다. 고맙다는 감사하다는 말도 못하고 얼른 나와 골목 어딘가에서 한 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큰삼촌도 여유 없으면서’ 애기 때부터 키워준 아버지 같은 큰삼촌. 선물로 항상 도서상품권을 함께 주시던 큰삼촌. 필자에게 그 때는 성공이 남 이야기 같았다. 늘 불안했다. 지금 와서 보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공할 <사람대접>을 받지 않았나 싶다.


드라마 < 슬기로운 감빵생활> 마지막 회에서 무기수 김민철은 주인공 김제혁에게 이렇게 말을 건낸다. “김제혁 선수가 그라운드에 서는 날 빚을 내서라도 동네잔치를 할 겁니다. 나 같은 사람을 형처럼 대해줘서 고마워서 그럽니다.” 김제혁을 괴롭히던 똘마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사람대접> 처음 받았습니다.”라며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심리극을 만든 < 제이콥 모레노>는 “프로이드는 꿈을 꾸지만, 나는 꿈을 꾸게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28살에 필자가 들은 ‘성공할 사람’이라는 이 말 한마디가 꿈을 꾸게 해주었다. 오늘 <따뜻하신 마음에 눈물이 계속 납니다.> 라는 문자를 보낸 그 내담자에게 “답답한 마음을 보내 주세요. 두서없어도 돼요. 두서 있을 수 없어요. 지금은”이란 말이 계속 눈물을 자아내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듯 변변치 못해도 누구 한 사람이 건네주는 <사람대접>은 살아갈 힘을 준다.

그 한 사람을 찾기 보다는 스스로 한 사람이 되어 주면 어떨까?
오늘 그 < 사람대접> 함 해보자.

 

윤재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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