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별명이 코보였던 S사장.
동창회에 가면 여전히 코보로 통했다. 항상 코를 흘렸고 그 코를 닦은 소매 끝은 늘상 번들거렸다. 여학생들은 그를 심술 코보라고 불렀다. 고무줄 놀이, 공기 놀이 등을 훼방놓고, 머리 끝을 잡아 채는 등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해했다.

아버지는 코보가 젖먹이였을 때 파도에 휩쓸려 갔다. 어머니는 행상으로 그를 키웠다. 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더러 걸르기도 했다. 하루도 싸움을 빼먹지 않았고 벌을 서는 것과 누군가를 울리는 것은 그가 코를 흘리는 것 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었다.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런 악동 짓을 했다. 고등학교 대신 공장을 택했다. 이때부터 싸움질 대신 돈버는 일에 열중하면서 사회에 일찍 눈을 뜨게 됐다.

이 공장, 저 공장으로 전전하며 지방, 도시 등을 거쳐 서울로 진출한 코보.
청계천에서 이런 저런 기술을 배워가며 생활하다가 군대를 갔다. 군에서는 장교를 두들겨 패고는 군형무소 생활 후 조기 전역이 됐다.

제대 후 코보는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싸움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청계천 조명기구상에서 점원 노릇을 하던 그에게 어느 날 커다란 계시가 왔다.
"그래, 바로 이거다. 이것만 개발하면 떼 돈을 벌 수 있어."
값비싼 크리스탈 전등의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날 때 코보는 진품과 거의 같은 인조 크리스탈을 만들어 싸게 팔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밤 잠을 설쳐가며 인조 크리스탈 개발에 매달렸다.

2년여 만에 아크릴을 소재로 한 크리스탈을 만들어 특허를 냈고 전국에 대리점을 모집, 독점판매가 시작됐다.

물건이 달렸다. 처음에는 돈을 세었으나 나중에는 가마니에 쓸어담고는 가마니가 몇 개인가로 얼마쯤 되는가를 헤아렸다. 정신없이 돈을 벌었다. 돈 같지 않았다. 낙엽같았다. 집 한 채사고 가재도구, 가전제품 등을 사고나니 크게 돈쓸 일이 없는듯 했다.

은행통장에는 자고나면 잔고가 불어났다. 어떻게 돈을 쓸까? 어렸을 때 고생했던 과거를 생각하며 멋지게 돈 쓰는 법을 연구했지만 별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배움이 짧아서 회사를 차려 키워내겠다는 생각도 못했고 장학 사업도 불우이웃돕기도 생각할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돈 속에 파묻혀 살아보자."
코보는 천장에 돈주머니를 매달았고 바닥의 요 밑과 덮은 이불속에도 돈을 넣어 돈 속에서 잠을 잤다. 천장이 무너져도 돈벼락을 맞을 생각을 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돈이 많아지자 여자와 사기꾼이 주위에 들끓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명문대학을 나온 여자와 결혼을 했다. 아들, 딸이 생겼다. 아이는 낳았지만 부인과는 대화가 잘 안통하고 생각이 안맞아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여자는 집 한채 챙기곤 아들, 딸 다 팽게치고 가버렸다. 폭행죄로 경찰서에도 갔고 꽤 많은 돈을 합의금으로 내고 풀려나기도 했다.

어느 날 자주 다니는 단골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구멍난 양말 신은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도움을 준 뒤로 돈을 이렇게 쓰는 것이란 (돈의 철학)을 터득했다.

코보는 매 월 익명으로 소년, 소녀 가장을 위해 기부하는 재미로 세상을 산다. 술을 좋아하는 코보는 노래방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 할만하다. 그가 술 한잔 걸치고 노래방에 들르는 날은 소년, 소녀 가장에게 송금했거나 또 다른 도움을 준 경우이다.

코보의 명은 을유(乙酉)년, 기묘(己卯)월, 을해(乙亥)일, 경진(庚辰)시 이다. 신왕, 관왕, 재약한 명에서 돈 복이 엄청났던 것은 조상의 은덕, 하늘의 뜻이 있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풀지 못할 사주다. 월, 기묘라는 기운, 년월 지지 묘유충은 방랑자, 깡패와 같은 기운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시가 신사(辛巳)가 아닌 경진인 것도 하늘의 도움이 있기에 그러하다할 것이다. 만약 신사시였다면 아마도 감옥생활을 오래하게 됐거나 "큰 형님" 소리를 듣는 인생이 됐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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