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함백산 올라 동장군을 영접하다
허겁지겁 정상부를 벗어나 헬기장 아래로 칼바람을 피했다. 코 앞에 함백산의 랜드마크 격인 주목이 아는 체 했다. 지난 여름 만났을 시 ‘겨울에 다시 오마’라고 했는데 헛헛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제자리 지키는 주목은 만고풍상 겪으면서도 꼿꼿하고 의연하다.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이다. 두문동재(싸리재) 방향 능선길로 들어섰다. 수북하게 쌓인 눈길이지만 앞서 걸음한 산객들로 인해 고랑이 생겨 걷기가 수월했다. 중함백 조금 못미쳐 안부에 자리를 폈다. 눈길을 헤치느라 체력 소모가 커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다. 땀에 젖은 옷 속으로 한기가 스며들고 물기 머금은 장갑은 이내 얼어 뻣뻣하다. 손끝은 아릴 정도로 시리다. 준비해 온 비닐을 펼쳐 뒤집어 썼다. 비닐 속에 열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일행이 건넨 소주 일잔이 전류처럼 온몸 구석구석 번진다. 방전된 체력을 그렇게 충전했다.(함께한 일행은 고교 동문 후배들) 순백의 눈고랑을 따라 다시 걸음을 서둘렀다. 중함백 봉우리를 넘어 적조암 삼거리에 이르자, 구름사이로 잠깐씩 햇살이 내비췄다. 날머리로 잡은 두문동재까지는 3.2km, 결코 만만치 않은 봉우리, 은대봉(1442.3m)을 넘어야 한다. 여러번 걸음 한 함백산이다. 특히 겨울 함백산은 묘한 끌림이 있다. 왜일까? 상고대 뒤덮힌 백두대간 능선을 딛고 서면 솜털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다. 이러한 몽환적 풍광에 이끌려 홀린 듯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은빛찬란한 풍광에 빠져 까칠한 은대봉(1442.3m) 오름길을 힘든 줄 모르고 올라섰다. 지나온 함백산 정상은 어느새 아스라이 물러나 있고, 두문동재 건너 금대봉(1,418m)이 바짝 다가섰다. 마주하고 있는 금대봉과 은대봉은, 감춰져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태백산 정암사의 금탑과 은탑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짧은 겨울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은대봉에 길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걸음을 서두르란 시그널이다. 뒤처진 몇몇을 은대봉에서 기다려 함께 두문동재(싸리재)로 내려섰다. 정선군 고한과 태백시 경계선인 이 재를 두고 태백에서는 싸리재, 고한에서는 두문동재라 부른다. 엄청난 적설량, 눈보라, 상고대, 그리고 독한 칼바람까지, 강원 설산의 진수를 제대로 맛보았다. 산행 내내 은빛찬란한 풍광에 眼球도 모처럼 호사를 누렸다. 세속에 찌들어 팍팍해진 가슴도 촉촉해진 느낌이다. 함백산에서 충전된 순백의 풍광은 오랜 시간, 뇌리에 머물 것 같다. 만항재 -> 함백산 -> 중함백 -> 적조암삼거리 -> 은대봉 -> 두문동재(싸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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