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피터스와 ‘철면피 학장’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얼마 전에 구입한 톰 피터스의 저서 ‘미래를 경영하라(Re-imagine)’ 가 놓여져 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그는 ’철면피 학장‘ 이란 제목으로 은사였던 로버트 재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2002년 나는 스탠퍼드 대학에 내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 당한적이 있다. 내가 그런 요청을 하게 된 까닭은 이렇다.




내가 학위를 받을 당시 경영대학원의 학장은 회계학 교수인 로버트 재딕 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고급회계학을 배웠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로부터 30년 후였다. 텔레비전에서 그가 엔론사태에 관해 증언하는 장면을 본 것이다. 그는 엔론 이사회의 임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감사위원회 의장 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엔론을 추락시킨 수많은 불법거래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다.




엔론의 최종 회계책임자가 전혀 모른다고 발뺌하다니 말이나 되는가? 그렇다면 그는 학장 시절에 자기도 모르는 회계학을 나에게 가르쳤단 말인가? 내가 배운 ‘고급’회계학은 무엇이란 말인가? 경영대학원을 비롯한 전통적인 경영교육이 전보다 훨씬 한심하게 여겨졌다. 정말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교육이 이 지경이니 ‘널리 인정되는 경영관행’ 은 말할 것도 없다.“




‘황금낙하산’의 CEO와 ‘일반’근로자




1980년 미국에서 CEO와 일반근로자 간의 월급격차는 45배 였다. 그것이 97년에는 305배, 심지어 성장이 정체된 2000년에도 458배로 훌쩍 뛰었다. 정말 경영을 잘해서 종업원들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경영자라면 봐줄 만도 하다. 문제는 엉터리 경영을 했는데도 거액을 받는다는데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CEO로 영입될 때 미리 비상탈출구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미국에서는 ‘황금 낙하산(Golden Parachute)’ 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황금낙하산’ 이란 대표이사나 임원 등이 본인의 의사에 의하지 않고 임기전에 사임하게 될 경우 거액의 퇴직금이나 저가의 주식매입선택권 등을 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엔론은 2001년 파산보호신청을 준비하면서 140명의 고위간부들에게 현금과 주식으로 6억8000만 달러를 지출했다. 여기에는 2000년 12월부터 1년간 케네스 레이 전 회장에게 지급된 봉급과 보너스, 비공개주식 등 6740만 달러가 포함되어 있다. 다른 간부들은 한 명당 약480만 달러를 받았다. 직장을 잃은 대가로 직원들이 받은 돈은 평균 1만3500달러. 잘못은 경영진이 했는데도 오히려 피해는 종업원들이 보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와 닷컴의 거품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탐욕이 어떻게 웹을 망쳤는가’ 라는 기사에서 1999년부터 돈과 스톡옵션이 기업가 정신을 대체하면서 닷컴의 불행은 시작됐으며, 닷컴 열풍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경영진과 벤처투자자, 월가 및 언론의 합작품이라고 말한다.




약간의 신기술과 모호한 사업개념으로 닷컴을 설립한 경영자 → 거기에 돈을 퍼부었던 벤처 캐피털 → 준비가 안된 닷컴들의 기업공개를 서둘렀던 투자은행 → 호의적인 보고서를 제시한 월가의 애널리스트 → 닷컴의 막대한 성장 가능성만을 강조하는 언론 등으로 탐욕의 고리가 형성됐던 것이다. 여기에 두 세배의 이익실현은 기본으로 생각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마지막 고리로 등장하면서 닷컴 붐은 절정에 달했다.




스탠포트 경영대학원 조직행동학 교수인 제프리 프레퍼는 “실리콘밸리의 문화는 `탐욕’ `돈’ `경쟁’ `야망’ 의 결합체” 라며 “모든 가치기준이 집과 차의 크기, 스톡옵션 규모와 같은 화폐단위로 환산되는 등 지나친 면이 많다” 고 평가했다.




대안으로서의 철학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에서 오늘날의 세계가 “인간의 본성이 비인간적 기술과 조직 속에서 질식되어 쇠약해져 가고 있고, 인간의 생명을 지탱해왔던 자연 또한 파괴되어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인간 경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재생 불가능한 자원, 특히 화석 연료의 고갈을 앞에 두고 있다” 는 세 가지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그는 물질 지상주의, 거대 기술 신앙, 탐욕과 질투심에 의한 무분별한 풍요로움의 추구를 지적한다. 곧 근대 이후에 등장한 자연 지배를 정당화하는 진보 사관과 운송·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끊임없는 팽창주의는 자연의 파괴와 오염을 가속화했으며, 급기야는 인간 자신의 자유와 존엄, 창조력도 억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경제 발전의 기본적인 요소는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며, 이 인간의 마음이 바뀌어야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대의 과학, 기술을 재검토하여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새로운 목적의 기술을 채용해야 하며, 거대화에 따른 인간의 파멸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주장을 펼친다. 인간은 거대 조직보다 작은 단위의 조직에서 창조성과 활력, 인간다움을 잘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으로서의 삶의 양식




몇일 전에 사석에서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를 역임한 목회자 한 분을 뵌 적이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CEO와 관련된 서로의 관점을 대화하던 중 그 분이 CEO의 요건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것은 모름지기 ‘인간 본연의 모습’ 이라고 강조 했다. CEO가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도가 더욱 커질수록 ‘기본적인 인간성’ 을 상실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개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단순하게 살기’ ‘느리게 살기’ ‘본질로의 회귀’ 등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물질문명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기를 수용하되 삶의 지향점을 ‘더 많이 가지는 것’ 에서 자기성찰, 가족, 자연, 행복에 두는 삶의 자세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탐욕을 긍정적이며 생산적으로 변환하려는 노력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배척하는 소유적 욕심을 자신도 이롭고, 타인도 이로운 본성의 욕망으로 변용시키는 것이다.




최근에 새로운 비즈니스를 준비하면서 물질적인 욕망이 기업의 이익과 가치의 극대화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관계의 균열이 시작되며 기업인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 철학과 학문, 문화와 예술, 기업행위 등 모든 사회현상의 탐구는 궁극적으로 다시 인간으로 회귀된다. 나도 참 인간으로 좋은 이들과 더불어 살다가 인간답게 고귀하게 생을 마감하길 원한다. 이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자 원대한 삶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