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내일을 꿈꾼다. 꿈꾼다는 건 오늘과 다른 내일을 소망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디딤돌을 딛고 내일로 간다. 그 디딤돌이 부실한 자는 늘 오늘에 갇혀 산다. 내일은 보장된 미래가 아니다. 기회·두려움·성공·실패·좌절·재기…. 미래는 이 모든 이름을 달고 있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원하면 오늘을 바꿔야 한다. 그럼 내일은 절로 달라진다.

삼국시대 오왕 손권은 부하 장수 여몽이 무술만 연마하고 학식이 부족한 것을 염려했다. “국가의 큰 일을 맡으려는 자는 글을 읽어 지식을 쌓아야 하오.” 왕의 당부에 여몽은 무술만큼이나 학문을 갈고닦았다. 어느 날, 평소 여몽을 무식하다고 경시한 재상 노숙이 그의 학식이 놀랄 만큼 깊어지고 풍모 또한 온화해진 걸 보고 크게 놀랐다. 노숙이 연유를 묻자 여몽이 답했다. “선비라면 사흘을 떨어져 있다 만났을 땐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야 하는 법입니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

여몽의 배움은 제대로 쓰였다. 노숙이 죽은 뒤 손권을 보좌해 국력을 키웠고, 촉나라 관우를 사로잡는 등 수많은 공을 세웠다. 오나라 백성은 그를 명장이자 지장으로 추앙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다.

괄목상대(刮目相對)는 학식이나 재주가 눈을 비비고(刮) 볼 정도로 예전과 달라졌음을 뜻하는 말이다. 괄목상관(刮目相觀), 괄목상간(刮目相看)으로도 쓴다. 학문을 닦기 이전의 여몽처럼 무예만 뛰어나고 학식이 부족한 사람을 오하아몽(吳下阿蒙)이라고 한다. 괄목상대의 ‘파생어’인 셈이다.

‘날로 달로 성장하고 진보한다’는 일취월장(日就月將)도 괄목상대와 뜻이 비슷하다. ≪시경≫에 나오는 구절로 주나라 성왕이 자신은 비록 총명하지 못하지만 날로 달로 익힐터이니 신하들도 어질고 착한 행실에 힘써달라고 당부하면서 한 말이다. 은나라 시조 탕 임금이 게으름을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반명에 새겼다는 일신일신우일신(日新日新又日新)도 자주 쓰인다. 하루하루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뜻이다.

게으름에 지면 늘 그 자리다. 갇혀서 한 곳에 오래 머문 게 바로 화석이다. 익힘에 게으른 자는 어제의 자로 오늘을 잰다. 그러면서 어긋남이 많다고 투덜댄다. 사상누각은 머리로만 짓는 집이고, 일장춘몽은 머리로만 꾸는 꿈이다. 삶을 바꾸는 건 머리보다 발이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면 몸을 움직여라.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작가/시인
[바람난 고사성어] 괄목상대(刮目相對)-삶을 바꾸는 건 머리보다 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