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땐 산으로 올라가 소리를 한 번 질러봐. 나처럼 이렇게 가슴을 펴고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1996년 여름을 강타했던 ‘꿍따리 샤바라’의 첫 구절이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대만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며 '한류' 열풍의 문을 열었던 한류의 원조, 클론의 멤버 강원래를 만났다. 클론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 '위 아(WE ARE)'로 12년 만에 컴백한 대한민국 최고의 춤꾼, 강원래는 경기고등학교 동갑내기 동창인 구준엽과 1989년 ‘현진영과 와와’의 백업 댄서로 연예계에 등장했다. 이후 1996년 ‘클론’을 결성, 첫 앨범의 수록 곡인 ‘꿍따리 샤바라’가 전국을 강타, 연이어 ‘도시탈출’, ‘돌아와’, ‘초련’까지 히트곡을 내며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한창 잘 나가던 강원래는 2000년 갑작스러운 오토바이 사고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몇 차례 대수술과 재활치료를 받으며 끝없는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견뎌냈다고 했다. 그러던 2004년, 보호관찰소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강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꿈이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문구를 보고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후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원래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2005년 ‘Victory’ 앨범을 내고 클론으로 활동을 재기했다. 2008년부터는 장애인들로 구성된 ‘꿍따리유랑단’을 만들어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공연을 통해 열심히 살아가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예전의 자신과 같이 희망을 잃어버린 많은 사람에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예전보다 수입은 적어졌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그는 다양한 강연 무대에서 강연자로서도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는 사고 이후 클론 활동 이외에 강연자, 라디오 DJ, 영화감독, 작가 등 더 많은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너무 많아요.”라며 기다렸다는 듯 답변을 이어간다. "꿍따리유랑단 무대를 미국 브로드웨이에 올리는 것이 꿈이에요. 그리고, 클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우정과 사랑, 성공, 좌절, 재기 등 모든 영화적 요소가 다 들어있잖아요.”라고 답하는 그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찾아 다시 일어선 그는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강원도에 공연을 가야 한다며 급하게 길을 나섰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만나서 반가웠고 인터뷰 즐거웠습니다. 강원래입니다. 기억해주세요.”라는 문자가 배달되었다. 그는 역시 프로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춤꾼에서 앞으로 춤을 출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다시 대중 앞에 나선 그를 만나면서 ‘내가 만일 그였다면 어땠을지?’ 감히 상상해 본다. 분노와 좌절, 고뇌의 반복 속에서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나는 그가 우리 앞에서 ‘안녕하세요? 강원래입니다.”하고 나서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가슴이 벅차다. 왜냐면 용기 내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고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더욱 그렇다.

“자신이 어떤 상황이든 반드시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찾아 즐겁게 하라. 일하면서 즐겁고 행복하다면 이게 바로 살맛 나는 세상 아닌가요?”라는 강원래. 그가 전하는 긍정과 행복 메시지, 제2의 인생을 힘차게 도전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잠시 잊고 있던 우리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다.

김소진< 제니휴먼리소스 대표>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