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은 쓸수록 예민해진다. 두뇌도 쓰는 쪽이 발달한다. 놀 궁리만 하면 노는 두뇌가 빨리 돌아가고, 배움에 뜻을 두면 공부 두뇌가 회전하기 시작한다. 평소에 무기를 벼리지 않으면 전쟁이 나도 정작 쓸데가 없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노크해도 문을 열어주지 못한다. 갈지 않으면 녹슬고, 녹슬면 무거워진다. 갖추면 의외로 기회는 많다.

꿈은 뜻대로만 펼쳐지지 않는다. 유비도 큰뜻을 품었지만 처지는  녹록지 않았다. 사실 제갈량 없는 유비는 조조보다 한 수 아래였다. 조조에게 쫓기던 유비가 형주 지사 유포에게 수년 간 몸을 의지했다. 극진한 예로 환대하던 유포가 하루는 연회에 유비를 초대했다. 한데 연회장 화장실에서 무심코 자신의 넓적다리를 본 유비는 마음이  무거웠다. 오랜 세월 놀고먹기만 한 탓에 허벅지가 너무 굵어져 있었다. 한때 천하를 꿈꾸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났다.

눈물 자국을 본 유포가 연유를 물었다. 유비가 답했다. “저는 언제나 몸이 말안장을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한데 요즘은 말을 타는 일이 없어 허벅지가 다시 굵어졌습니다. 세월은 달려가니 멀잖아 늙음이 닥쳐올텐데 이룬 공이 없어 그것을 슬퍼한 것입니다.” ‘넓적다리에 살이 붙음을 슬퍼한다’는 비육지탄(脾肉之嘆)은 ≪삼국지≫에 나오는 이 장면이 유래다.

우스갯말로 현대인들은 살과 싸우며 ‘비육지탄’한다. 빼려고 애써도 악착같이 달라붙는 게 살이다. 그러니 살과의 전쟁에선 모든 무기를 써야한다. 인내라는 무기, 절제라는 무기를 총동원해야 한다. 각설하고, 유비에게 넓적다리 살은 ‘헛되이 보낸 세월’이다. 뜻은 여물지 못하고 몸에만 살이 붙은 허송세월이다. 영혼은 허해지고 육체는 무거워진 시간이다.

모든 출발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후회와 각오, 희망과 절망은 모두 내게서 말미암는다. ‘비육(脾肉)’은 유비 자신을 돌아보게 한 자극, 스스로를 다잡게 한 촉매다. 유비는 살이 붙은 자신의 넓적다리를 보며 다시 뜻을 세우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깨닫지 못하면 늘 그 자리다. 쓰지 않으면 무거워진다.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무거워지고, 쓰지 않으면 머리가 탁해진다. 무거우면 둔해진다. 지방이 쌓인 혈관은 신호다. 지금부터라도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그대로 방치하면 앞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작가/시인
[바람난 고사성어] 비육지탄(脾肉之嘆)-쓰지 않으면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