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 때 한 도사가 불사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영원히 살게 하는 불사약의 재료 중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완전히 초월한 인육(人肉)도 포함됐습니다. 어디서 이것을 구해야 할지 난감해 하던 도사에게 두자춘(杜子春)이란 사람이 자원해 나섰습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결코 잊을 수 없는 큰 덕을 입었으니 댓가로 내 살을 제공하겠다"고요.

이후 두자춘은 일체의 인간적 감정을 초월해야 하는 테스트를 거쳤습니다. 극락의 희열과 지옥의 공포를 무감정으로 견뎌냈으며 아내의 몸이 찢기어 죽는 순간마저도 무표정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시련을 이기지 못해 실격합니다. 어린 아들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피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만 것이지요. 그는 자식의 죽음 앞에서 그렇게 무너져내렸습니다.

어디 두자춘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땅에도 참척(慘慽)당한 어버이들의 탄식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동안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살아야 하니, 내 딸 아들을 만나야 하니 이제는 밥도 먹고 있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미친 거라고, 자식 새끼 바다 안에 넣어놓고 그래도 밥을 떠먹고 있다고, 이렇게 웃는 건, 이미 미쳐버린 상태니까 가능한 거라고 말입니다."

"앞으론 외박 금지야. 금방 갔다온다면 한번 생각해 볼께. 근데 한 가지 약속이 있어. 잠깐이라도 아빠 꿈속에 웃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주면 생각해볼께. 덧니 보여주면서 환하게 웃어줘!"

옛말에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지요. 세월호 참사 발생 한 달 하고도 보름인데요. 구조는 없고 싸늘한 시신만 발견되다가 이젠 그마저 뜸해졌습니다. 아직 못 찾은 생명은 현재 16명. 참사 초기의 "살려주세요"가 "찾아주세요"로 바뀐 지 꽤 됐습니다. 함께 아픔을 나누던 가족들이 하나 둘 떠난 팽목항은 지금 휑해졌다지요. "마지막 한 명까지 찾아달라"는 남은 실종자 가족들은 수색이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뒤늦게 자식의 시신을 찾은 한 어머니는 이렇게 항변합니다. "내 아이가 죽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아요? 사고 나고 처음 며칠 동안엔 그래도 희망이 있었어요. 근데 하루 이틀 사흘 지나면서 그 희망이 다 사라졌어요. 아직도 아이 못 찾은 부모들은 아이가 죽어서라도 돌아온 부모들을 부러워해요. 알겠어요? 아이가 죽어서 돌아온 부모들을 부러워한다구요! 너무 미안해서 아이 찾았냐고 물어보지도 못해요! 우린 죽은 아이 붙잡고 울면서도 미안해 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런 기분을 알아요? 우리가 대체 왜 미안해 해야 하는데요?"

거대한 정경 유착과 도덕적 해이, 무관심의 종합 세트가 빚은 대참사.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 나라 운영 시스템엔 휴먼웨어가 없다"는 사실을.


▲ 김민기 - 저 부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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