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거나 힘들 때 생각나는 추억들

해외 연수 발령을 받고 뉴욕행 비행기를 탈 때, 뉴욕에 내려 택시를 잡고 맨해튼을 들어서,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전철을 갈아 탈 때, 아주 행복했습니다.

2년 넘게 영어사전을 뒤져가며 번역한 책이 세가지 신문에 “좋은 책 소개”로 실렸을 때,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어느 회사에서 그 책을 신입사원 교육교재로 사용한다는 연락이 왔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 만난 여성이 피아노 앞에 앉아, 고운 손가락으로 치는 선율, “은파”와 “소녀의 기도”는 그녀의 기도처럼 들렸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어머님께서, “나, 너 때문에 행복했다. 너 때문에 10년 더 살았다.”고 떨리는 음성으로 간신히 고백하실 때, 저는 너무 기뻐서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슬픈 건지 기쁜 건지 헷갈렸습니다.

공장에서 일을 하며, 3년 동안 재수를 하고 삼수를 해서, “합격통지서”를 받은 날, 골목길 선술집에 혼자 들어가, 기쁨이 넘치는 소주 한잔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의를 하고 나오자 마자, “소정의 강사료를 입금 하였습니다.”는 문자를 보면서 감사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문까지 쫓아 나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교육담당자와 인사를 나누며 어찌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제 책을 읽은 독자가, 아는 분도 아닌데, 그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며, 갑자기 만나자고 하여, 멀리 찾아가서 만난 자리에, 그녀는 볼펜을 주면서 “작은 책값”이라고 하는데 어찌 그냥 돌아 올 수 있겠습니까? 책을 판 것도 아닌데.

강의를 하고 오다가 양평 두물머리 강가에 차를 대고, 카페 모카 한 잔을 마시며,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을 들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하고 기쁜 마음이 듭니다.

일요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리시버를 끼고 듣는 막스 부르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어떤 순간의 즐거움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슬프고 힘들고 괴로울 때, 저는 가끔 기쁜 순간들을 생각합니다.

더 힘들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저보다 더 힘들어 하는 분들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더 힘들게 살았던 위대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온 몸에 상처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던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 끼니를 굶어가며 국가 발전을 위해 교육에 몸바친 독일의 철학자 요한 피히테,

서른 나이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 가난과 시련 속에서 음악의 거장이 되고 악성(樂聖)으로 불리는 베토벤 등을 생각합니다.

그 분들에게는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그것도 얄팍한 인간의 속성입니다.

홍석기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