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댄서: 하루에 15시간 이상 연습한다. 수도 없이 다리를 찢는다. 골절이 되어도 붕대 감고 열심히 춘다. 시멘트 바닥이든 3류 스테이지든 가리지 않고 ‘팬이 부르면 달려간다’는 정신으로 일한다. 돈이 전부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백수: 누가 돈 내라는 얘기할까봐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린다. 소심하다. 괜한 자책감과 자격지심에 시달린다. 집에서 방바닥을 긁으며 애국가 시작부터 끝까지 TV를 본다. 인간관계가 소원해진다. 샴푸가 적게 드는 대신 담배 값이 많이 든다. 비디오는 안 본 게 없고 짜증이 심하다.

마니아: 최근 발견한 정보에 대해서는 혼자만 아는 양 떠들며 잘난 척한다. 모르는 것이 없지만 진정으로 즐기지는 못한다. 말이 많다. 영화 마니아는 직접 찍는다고, 록 마니아는 스스로 밴드를 만든다고 부모 속을 썩인다.

대학생: 학기 중엔 성적이 대수냐고 하다가 방학 때 성적표 나오면 다음 학기부터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르바이트 한 돈은 계절학기로 날린다. 재수강 하느라 주로 후배들과 수업을 듣는다. 자기 좋다는 사람 튕기다가 4년을 솔로로 보낸다. 삽질엔 도가 튼다. 학교 앞 당구장, 게임방, 술집 아저씨 등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애인: 매일 선물함으로써 상대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입에 발린 칭찬을 많이 한다. 말로는 못하는 것이 없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더디다. 다른 이성과 있었던 일을 자랑스럽게 말한다. 잠시만 전화를 안 받아도 의심한다. 끊임없이 모든 것을 확인하려고 한다. 피곤하다.

프로

댄서: 절대 하루 8시간 이상 춤추지 않는다. 근육을 애인처럼 부드럽게 마사지한다. 밥은 굶어도 연습실 바닥은 캐나다산 단풍나무로 깐다. 시멘트 바닥에서는 절대로 춤추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매기고, 돈도 안 되고 보람도 없는 곳에서는 시간을 버리지 않는다. 팬들이 외면하면 과감히 은퇴한다.

백수: 땡전 한 푼 없어도 당당하다. 몸 하나를 믿는다. 인생을 즐긴다는 자세로 술도 마시고 책도 쓴다. 직업란에는 프리랜서라고 그럴듯하게 적는다. 돈 나오는 구멍, 돈 안 드는 거리에 대해서 샅샅이 꿰고 있다.

마니아: 프로는 어느 분야나 말이 없다. 그저 웃으면서 직접 보여준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재즈 마니아는 재즈, 만화 마니아는 만화에 대해 꿈에서까지 느끼고 생각하고 보고 듣는다. 생활과 취미의 경계가 없다.

대학생: 학기 중엔 학점 잘 주는 수업으로 장학금을 받고, 진짜 실력은 방학 동안 닦는다. 캠퍼스 커플은 독약으로 간주하고 타대생과 사귄다. 연애든, 공부든, 미래직업에 관한 투자든 정력을 쏟는다. 필요한 돈을 벌어서 쓴다. 운전면허, 컴퓨터, 애인, 외국어, 매너는 기본이다.

애인: 작은 성의를 보인다. ‘너밖에 없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 따위의 진부한 표현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애인의 식구들에게 잘보인다. 기념일을 잊지 않는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상대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며 질투하지 않는다. 다른 이성을 만나지 않지만 만약 만날 경우에는 완벽하게 비밀을 유지한다. 이끌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대를 이끌고 있다.

- 『백서 白書』(시공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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