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시험에서 떨어졌다. 편입 시험이다. 필기시험과 서류 전형을 다 통과했는데 마지막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다. 그도 그럴것이 면접시험 당시 필자가 해외에 있었다. 이런 탓에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따뜻한 국물에 밥 말아 먹여 보내면서 “아들, 힘 내!” 했으면 합격하지 않았을까?

작년 일이다. 여기저기서 수능 시험을 치룬 뒤라 어딜 가던지 수능이야기 또는 입학관련 전략(?)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동네 커피숍에 앉아 있으면 전후좌우,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의 이야기는 온통 자녀들 진학이야기다. 목소리가 커서 아주 또렷이 들리는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 어지간한 입시전문가 뺨친다. 그만큼 부모들은 자녀들을 장래를 염려하고 생각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진행자 멘트가 참 인상적이다. “애청자 여러분, 오늘은 <해야 할 일> 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날 되길 바랍니다.”  이 가을 끝자락 듣기에는 너무 달콤한 말이지만 우리네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즈음에서 다시 아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엄마! 지금 기도 중인데, 엄마도 기도 같이 좀 해주세요!”

“무슨 기도인데?”

“올해 편입 시험을 볼지에 대해 기도하고 있어요.”

“.... 그래.. 같이 기도할 께!”

한 달 후 아들은 시험 공부하던 책을 정리하고 책상 위에 노트북 한 대와 데스크 탑 모니터까지 세팅해 두었다.

“이건 뭐니?”

“게임하려고 이렇게 했어요.”

“....기도 응답이 왔니?”

“네, 시험은 안하기로 했어요. 복학하면 열심히 하려고요.”

과연 어느 신이 이런 응답을 내릴 수가 있을까. “그래, 너는 시험공부를 중단하고 네가 하고 싶은 게임을 해라!” 아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 보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 필자도 알 수가 없다. 아들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을 게다. 또, “네 생각이 틀렸어!”라고 말해서 싸우느니 언젠가 아들이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날이 오기를 기다려주기로 마음을 정리한다. 때로는 아주 중요한 결정일지라도 자녀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필자 몫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필자 마음 한 구석엔 아쉬움이 남아있다. 어느 CEO 말이 떠오른다. “성공한 사람은 개척자다. 대부분 사람들은 불을 피우는데 와서 왜, 연기를 피우느냐고 말을 한다. 그러나 결국 불을 피워내면 그 사람들이 와서 불을 쬔다."

결국 프로는 불을 피우는 사람이고 아마추어는 불을 쬐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제발, 아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길 기대해본다.  이 건 좀 무리일까?  Ⓒjslee3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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