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와 죽음의 기술>

인간의 탄생은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다. 그것이 운명이든 필연이든 누구도 자기 삶의 환경을 선택하지 못한다. 외부적 환경도 내면적 환경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다. 그 주어진 환경을 살아 내야 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이 근본적 물음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저 주어졌으니 사는 것으로 알고 살았고 또 그렇게 살도록 가르쳤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부모도 어린 자식을 앞에 두고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다. 울면 젖 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안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놀아주고 그렇게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만으로 부모의 역할이 다 된 줄 알고 살았다. 지금도 그렇다.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맞닥뜨려지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못 한 채 나이를 먹는다. 한 살, 두 살...10살... 또 그렇게. 말을 알아들으면서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라면서 접하게 되는 규범들을 익히는 대에 점점 최적화되어 간다. 크고 작은 사회집단들에 들어가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규범들을 잘 지키도록 훈련되면서 자신이 왜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놓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할 겨를 없이 40이 되고 50이 되고 또 70이 되어 버린다. 이제는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어리석다. 자신이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불편함에 대처하는 방법을 근근이 알려주는 것으로 최선이라 생각한다. 그런 말도 하기 싫은 사람은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살라는 식이다. 자신도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삶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살고 있으니 너도 살다 보면 알 것은 알 것이고 모를 것은 모른 채 살게 될 것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도 사는데 문제없다고 말한다. 이런 식의 말은 부모가 자식에게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왜 가르쳐 주지 않는가? 왜 생각하라 말하지 않는가? 자신도 모르기에 너도 몰라도 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다. 생각하라고 말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고 인정할 것이며 갑자기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해야 한다. 답을 주라는 말이 아니다.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해야 한다. 존재자로서 자신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지 고민하며 출발하는 삶은 분명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과는 다르다. 그렇게 살아야 그나마 조금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도 고민하지 않는다. 갑자기 주어진 삶도 살아지는 것처럼 느닷없이 찾아오는 죽음도 그렇게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결코 존재적 삶이 아니다. 내가 사는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사는 다른 누구의 삶을 두고 하는 생각이다. 마치 남 이야기하듯 그렇게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다. 존재적 삶을 사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 현재에 자기가 있는 한 삶의 주체는 자기다.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빌리면 자기는 주도성의 중심이며, 인상의 수령자요, 개인의 핵심적 야망, 이상, 재능 그리고 기술의 저장고다. 이것들은 개인에게 중심적 목적을 제공하고 삶의 의미를 산출한다.

이런 자신이 자기라는 주체로 분명히 있는 한 없어질 자기도 분명 주체자로 행세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살아온 삶만큼 죽을 것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잘 살기 위해 노력한 만큼 잘 죽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죽음의 행위는 개인에게는 다시는 수정할 수 없는 삶의 보고서를 제출하는 순간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전 인생의 이력을 되짚어 보는 순간이다. 어떤 보고서를 작성할지 어떤 이력을 남길지 진정 고민해 봐야 한다. 그 이력에 한탄과 눈물과 고통과 아픔만 있다면 살아남아 보내는 자들의 마음에 상처만 남기는 것이 될 것이다. 이력이 비록 화려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으며 아름다운 삶을 공유하며 때때로 즐거웠음을 보고할 수 있다면 그래서 죽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 삶은 의미 있는 삶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존재할 것이며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지 그 기술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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