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전에서 등단 동료들과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일상적 상견례와 함께 몇 가지 공지 사항을 전달할 예정이라는 전화에 흔쾌히 참석을 약속한 자리였지요. 오랜만의 지방 나들이도 설레지만 한 달 이상을 끈 모 기관 취업에 실패한 후유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 작용해 서둘러 열차 표를 끊었습니다.

대전역에서 만난 잡지 주간의 안내로 찾은 모임 장소는 옛 번화가 뒤편 음식점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2층 계단을 올라서니 수도권과 대구, 광주, 마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멤버들이 반가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열대엿 명 정도 됐을까. 올해 신인상 대상인 초면도 서넛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자마자 주간의 공식 멘트가 시작됐는데요. 예상하지 못했던 무거운 톤이었습니다.

“서두는 생략하고… 몇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 글 좀 열심히 씁시다…”

한 달에 괜찮은 작품 5편은 쓰려고 노력할 것, 여의찮을 땐 남의 작품 필사라도 부지런히 할 것, 일일이 시집 사 보기 힘들 땐 문학회 카페에 올라오는 좋은 시 꼼꼼히 읽을 것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시도 공부를 해야 튼실한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거였지요. 카페에 들어오면 안부도 서로 묻고 댓글도 달아주자는 주문 사항도 이어졌습니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찾았던 자리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곳으로 변했고요. 의식 내부에서 약간의 반발이 일었던 게 사실입니다. 누군 열심히 안 해서 못 쓰나?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글 쓰는 사람에게 이런 권고 자체가 속박은 아닌가…

하지만 그 생각은 순전히 뒤가 켕기는 걸 숨기려는 교만한 작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간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고개는 꺾였고 얼굴은 달아올랐습니다. 내가 쓴 부족한 시편들을 떠올리며 부끄러움에 떨었습니다. 십여 분이 마치 몇 시간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 나는 정말 시인인가.

곧이어 편집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한 유명 시인의 개인적 조언과 충고가 있었습니다. 콕콕, 아픈 곳을 송곳 같이 찌르는 지적에 다들 숨을 죽였습니다. 그건 비수였습니다.

“20년 전 등단 이후 5년간 내가 발표할 수 있었던 작품이라곤 딱 한 편뿐이었다. 당시는 주어진 공간도 좁았을 뿐더러 지방대학 출신인 지방 문인의 작품을 받아주는 곳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 후 3년간도 서너 편이 고작이었다. 그럼 지금은 어떠한가. 쏟아져 나오는 문예지들을 보라. 허용된 지면이 광야처럼 넓지 않은가. 그러나 안심하지 마라. 매년 얼굴을 내미는 수많은 신인들이 촉수를 뻗으며 비상을 대기하고 있다. 결국 시인으로 데뷔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시인으로 살아남는 일이 돼 버렸다. 열심히 노력해 좋은 작품을 쓰지 않으면 금세 죽은 시인이 되는 세상이다.”



낮 3시에 시작된 공식 모임은 2차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심장이 비수에 찔린 나는 수혈이 더 필요했습니다. KTX로 대구까지 이송돼 다음 날 새벽까지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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