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뒤숭숭한 꿈을 꾸다 깨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또다시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기세가 만만찮군요. 2월도 중순을 넘어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데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자주 옵니다. 저만치 있는 봄과 꽁꽁 얼어붙은 우리 마음 사이 통과객처럼.

20와트 전등 하나 밝히고 노트북을 엽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야겠습니다. 얼굴들을 떠올려 봅니다. 학교 친구와 선후배, 회사 동료, 성당 교우, 문학회원 그리고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 지금 옆 방에서 쿨쿨 자고 있는 가족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못다 한 말들이 너무 많습니다.

맞아, 그때 그랬지. 지금이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살아온 품새가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다시 하고 싶은 말들을 머리와 가슴으로 써서 주소 없이 부칩니다. 한 통 두 통 수십 통 심야 특급은 휘날리는 눈발 속을 달립니다. 오래 된 상처를 핥으며 아침을 기다리는 나에게 한 시인이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