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센 야생초.

10월이 아름다운 날에 들판 위로 하얀 햇살이 쏟아집니다. 잡초는 쓰러지면서도 겨자씨보다 작은 풀 씨앗을 만들었고, 강아지풀은 칼날이 지나간 허리에 좁쌀 씨앗을 남겼습니다. 해바라기는 햇살 전투에서 살아남은 까만 씨앗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흑진주 반지를 만들었고, 자갈밭의 장단 콩은 단단한 땅기운을 끌어 모아 야물고 빛나는 승자의 훈장을 만들었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잡초 씨앗은 오늘을 내일이라고 읽고, 지상에 안착한 야생초 씨앗은 내일을 봄이라고 읽겠지요. 바람은 늦게 핀 장미에 흰 눈이 앉으면 장미를 위한 운명 교향곡을 작곡하고, 비탈진 땅은 야생초 씨앗이 다 여물면 여백에 큰 그림을 그리겠지요. 봄에 다시 서기 위해 이제는 안식을 취해야 하는 야생초여! 들국화 향기를 맡으며 떠났다가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일어나 지구를 살려주라. 우리들에게 억세게 살아가는 용기를 주고, 희망으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며, 억센 기운으로 땅과 하늘을 연결하소서!

열림 야생초.

10월의 마지막 날이어서 더 즐거운 날에 햇살도 흥겹게 춤을 춥니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에서 족보를 알 수 없는 바람이 불고, 바람에 올라탄 야생초는 바람이 불면 허공을 날고, 바람이 자면 들판에 떨어지겠지요. 씨앗은 바람에 흔들릴 때면 무엇이라도 붙들고 싶고, 땅에 내리면 흙으로 재빨리 숨고 싶었지만 공간은 받아줄 빈틈이 없고 시간은 더디게 흐르겠지요. 눈 오는 날이면 눈으로 이불 삼고, 눈 녹으면 질척한 땅에 달라붙어 몸을 불리며, 건조한 겨울 햇살이 찾아와 몸을 말려 주겠지요. 차가운 지상 바람은 사철나무마저 혼미하게 하겠지만, 얼음장 아래에서, 들판의 양지에서, 새 생명이 또 시작되겠지요. 시작은 끝을 알 수 없기에 항상 열린 시작이며,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기에 또 시작이다. 새로운 생명을 위해 없음으로 돌아가는 빈손의 야생초여! 자기로만 살았던 한 점 욕망을 내려놓고 무한의 세계로 돌아가라. 당신의 희생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하소서!

순응 야생초.

가는 10월이 아쉬운 날에 차가운 햇살은 벌판의 들불을 만났습니다. 짧은 삶을 마친 야생초는 검불 속에 감추어둔 씨앗을 드러내고, 운이 좋은 야생초는 들불을 만나 까만 재로 변하면서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났습니다. 억세게 살아온 날들과 서럽게 참아온 날들이 타버리면서 열반에 든 수도승의 육신 타는 냄새를 풍겼습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람은 까만 재를 흙으로 돌려주었고, 바람 따라 탈출한 풀씨는 어느 자갈밭에 안착했습니다. 억센 삶을 살다가 정지된 상태로 돌아간 당신의 모습은 장엄했습니다. 있음이 없음으로 변하고 없음이 있음을 잉태하는 가을 들판은 축제의 공간입니다. 형체를 주고 소중한 씨앗을 챙긴 야생초여! 너무도 커서 보이지 않는 대승(大乘)의 수레바퀴에 다시 오르소서! 긴 겨울 이기고 살아남아 생명을 이어가고, 끈질긴 한민족처럼 빛살 좋은 터에서 자기 사명을 빛내며, 순응하지만 정의를 잃지 않는 강자의 위대함을 보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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