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에는 그라스라는 도시가 있다, 강원도 태백시 수준의 약 5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이 곳에 자리한 향수 퍼퓨머리 2곳의 한 해 방문객만 약 120만명이다. 파리에서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니스(Nice)를 가서, 또 다시 버스를 타고 두어시간을 가야만 다다를 수 있는 이 작은 도시는 어떻게 전 세계 향수의 중심이 되었을까.

가죽제조의 중심지가죽에 대한 높은 세금으로 인해 향 산업을 발전시키다.

중세시대에 그라스는 2차 산업인 제조업 중에서 가죽 생산에 주력한 곳이었다. 12세기에 가죽 교역과 가죽 무두질이 발전되어졌다. 그라스는 르네상스 때 장갑, 핸드백과 벨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라스와 상업적 제휴를 맺은 피사, 제노아와 같은 도시로 수출하였다. 특히 가죽 무두질이 발전했는데, 무두질이란 동물의 원피(原皮)로부터 가죽을 만드는 공정을 말한다. 동물 가죽 그대로는 부패하기 쉽기 때문에 물로 씻고, 지방이나 살조각을 제거하고, 유제를 작용시켜 가공한다. 몇 세기 간에 걸친 그라스의 가죽 무두질은 기술적 발전을 이룩하여, 그라스산 가죽에는 최고의 품질이라는 명성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러나 무두질은 악취가 심각하게 나는 작업이었다. 뜨거운 프랑스 남부의 공기 안에서 죽은 가죽의 껍데기를 다듬는 동안의 악취는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악취나는 가죽장갑에 향을 처음으로 입힌 그라스의 갈리마드 @photographed by Hani Oh


1747년에 설립된 그라스의 대표적인 퍼퓨머리 중 한 곳인 갈리마르(Galimard)가 참기 힘든 악취 덩어리의 가죽 장갑에 향을 묻히기 시작한다. 16세기에 프랑스왕 헨리 2세의 왕비인 카트린드 메디치(Catherine de Medici )는 이 그라스산 향나는 가죽 장갑을 받고 그 매력에 빠졌고, 17세기 그라스는 향나는 “장갑 조향사(Glovers Perfumers)“들의 전성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라스 사람들은 그라스의 외곽에서 꽃을 기르기 시작했다.

1614년, 당시 왕은 “장갑 조향사들”의 새로운 조합을 인정했다. 18세기 중반,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퍼퓨머리이자 유럽에서 세 번째로 가장 오래된 퍼퓨머리인 갈리마르를 포함하여 많은 퍼퓨머리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궁정에서 가죽에 대한 높은 세금이 부과되었다. 또한 지금도 버스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 니스와의 가죽 경쟁은 그라스에서의 가죽 산업의 쇠퇴와 가죽 향 생산 중단을 야기시켰다. 나와 함께 그라스의 구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그라스를 설명해준 국제 향수 박물관의 도미니크는 당시의 그라스 사람들은 가죽이 아닌 다른 산업에서 그들의 미래를 찾아야한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향 산업에 자신들의 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주었다.

이미 그들에게는 가죽에 덧입힐 향을 위해, 그들이 가꾸고 자연이 키워내는 라벤더, 소귀나무(myrtle), 재스민, 장미, 오렌지 블라썸, 야생 미모사와 같은 향들이 존재하니 말이다. 1차 산업 농업, 그 중에서 향료를 만들어내는 꽃, 식물를 재배하는 농업을 미기후(微氣候: 특히 주변 다른 지역과는 다른, 특정 좁은 지역의 기후)적 특징과 풍부한 물을 지닌 내륙의 언덕 지형을 살려 특화시킨다.

그라스 갈리마르의 향수박물관에 전시된 옛 향료제작 방식 재현 설비들 @photographed by Hani Oh


20세기, 다국적 화학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향료 농업에서 인공향 개발 기술과 음식향 개발 기술에 중점을 두다.


그라스의 센티폴리아 장미꽃 농장 @photographed by Hani Oh



아침에 내가 직접 수확한 센티폴리아 장미꽃 @photographed by Hani Oh


18세기 후반부터 그라스는 본격적으로 향수 산업의 중심이 되어 갔다. 1905년에는 5000톤, 1940년대에는 600톤, 2000년대 초반에는 30톤보다 적은 꽃이 수확되었다. 1960년대까지는 모든 향수 원료가 대부분 그리스산이었지만, 인공원료 사용이 증가하면서 노동집약적인 꽃 농장에서의 향 원료 농업산업의 규모는 축소되어졌다. 향료 농업산업은 노동집약적이다. 그라스의 재스민과 센티폴리아 장미는 해가 뜨는 시간에 꽃을 따야한다. 그 때 수확해야 꽃에서 가장 높은 밀도의 향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방송사 프로그램의 출연으로 인해, 작년 5월, 그라스에 자리한 센티폴리아 장미꽃 농장에서 직접 꽃을 땄었다. 이른 아침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그 날 나를 포함해서 총 네 사람이 2시간 가까이 작업했으나 꽃잎의 수확량은 10kg을 넘지 못했다. 1kg의 로즈 에센셜 오일을 얻기 위해서는 약 5톤의 장미꽃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프랑스의 시간당 최소 시급이 €9.67 (한화 약 12,380원)임을 감안할 때 천연 원료의 생산은 고비용이 요구되는 노동집약 산업임을 깨달을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거대한 국제 기업들은 점진적으로 키리스(Chiris), 지보단-루르(Givaudan-Roure), 로티에(Lautier)같은 그라스의 공장들을 매입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값싼 제조 단가를 위해서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라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라스 향수 산업은 거대한 자본을 가진 다국적 화학전문기업과 경쟁을 할 수가 없다. 때문에 그라스는 그들의 기술적 노하우를 통하여, 강점을 가질 수 있는 식품향, 아로마틱 합성과 같은 부분에 집중을 하며 보다 더 전문적인 천연 재료, 설비, 도급자(都給者) 등에 관련한 지식을 축적했다.

그라스의 주요한 퍼퓨머리들은 자연에서 날 것 그대로 얻는 물질(에센셜 오일, 콘크리트, 앱솔루트, 레지노이드(resinoids, 수지같은 물질), 분자 증류(molecular distillation), 쥬스라 불리우는 콘센트레이트를 생산하고 있다. 콘센트레이트는 80% 알코올에서 희석화되었을 때 향수에 공급되는 주요한 제품이다. 프랑스 향수와 아로마 생산의 약 절반을 생산하며, 세계적으로는 약 7~8% 생산을 담당하고 있으며, 음식향은 오늘날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1, 2차 산업에서 축적한 지식과 오랜 역사
시대의 흐름 속에서 향수라는 지역 산업의 정체성을 통해 관광, 즉 3차 산업이 발전하다.

그라스는 현재에도 그라스와 인근에 60개의 회사에서 3,5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약 1만명의 그라스 주민들이 향수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 지금도 수많은 조향사가 약 2천여가지의 향을 구분하기 위해 훈련을 받고 있으며, 세계적인 조향사들은 여전히 그라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갈리마드, 몰리나드, 프라고나르드같은 향수의 역사를 가진 ‘퍼퓨머리’들이 존재한다. 샤넬(Chanel)과 같은 주요 브랜드들이 그들만의 장미와 재스민 농장을 소유하고 있다. 그라스산 향수 원료는 세계최고로 손꼽힌다. 독일 출신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편 소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이 곳, 그라스이다. 2006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럽은 물론 미국, 아시아 전역에도 그라스는 향수의 도시임을 알리게 된다.

또한, 에르메스의 수석 조향사인 장 끌로드 엘레나(Jean-Claude Ellena), 세계적인 조향 그룹 퍼미니쉬(Firmenich) 출신이자, 루이 비통 수석 조향사인 자크 카발리에 벨루뤼(Jacques Cavallier Belletrud)가 태어난 곳이다. 그들은 전세계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 자신들이 그라스 출신이며, 그라스에서의 향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조향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그라스는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프랑스 그라스를 찾아갔을 때 길가에서 만난 6월의 라벤더 @photographed by Hani Oh


나 역시 언젠가 읽었던 조향사 장 끌로드 엘레나가 집으로 가던 길 그라스 길가에 한없이 펼쳐진 라벤더 향이 기억난다고 했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그라스에서 라벤더를 만나기를 고대했었다.

공중에서 분사되는 그라스의 향 @photographed by Hani Oh


1940년대부터 진행한 5월의 장미축제, 8월의 재스민 축제가 열린다. 장미 수확이 한창인 5월의 어느 날, 국제향수박물관의 도미니크와 그라스 관광청의 프랭크와 함께 그라스 거리를 걷는데, 하늘에서 ‘쏴아~’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분사되어 놀랐다. 이내 그 분사된 것이 바로 그라스의 5월의 장미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향수라는 그들의 정체성을 공중에서 향을 분사시키면서 완성시켜나가다니 숱한 위기에도 향수를 고집해온 향수의 도시 그라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300년 동안 개발해온 향료산업. 그 산업의 근간이 되는 1차 산업인 농업을 근간으로,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가지기 위해 산업영역을 세분화시켜가며 발전시켜온 향료 추출 기술과 노하우,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그로 인해 세계 향료산업의 중심이 되어 만들어지는 많은 이야기들이 향료산업의 권위자들은 물론 일반 여행객들에게도 찾아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도시를 만들었다. 유행하는 산업, 전도 유망하다는 신규 아이템을 쫓지 않고, 지역 주민들이 오랫동안 종사한 산업에서 그들이 더욱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위기의 순간마다 노력한 이 향기로운 도시야말로 사람들의 발길이 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듯 싶다.





오하니(Hani Oh)
향수 프로듀서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현) 한국향문화연구소 대표
현) 한국법제정책연구회 도시정책컨설팅센터장
현) 뷰티, 패션, F&B, 도시 등 다수의 브랜딩 및 컨설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여우야, 뉴욕가자> 저자
프랑스 파리 퍼퓨머리 라티쟌(L’artisan Parfumeur), 그라스 갈리마드(Gallimard) 향수 제작 워크샵 수료
뉴욕 패션스쿨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패션 머천다이징 매니지먼트 전공
뉴욕 F.I.T. 이미지 컨설팅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