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를 말한다(21) 
'개그맨들이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이유'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직업은 무엇일까. 정확한 답을 알 수는 없지만 개그맨은 꽤 높은 순위에 들 것이다.

본인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별로 인기도 실력도 별로 없어 보이는 개그맨들이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여자에게 팔짱 걸린 채로 신랑 입장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봐 온 터다. 여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정답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일단 연애와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부터 고찰할 필요가 있다. 좀 거창한 얘기지만 매우 중요하므로 잘 읽어주시길 특별히 당부 드린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추상적인 질문 같지만 대답은 아주 명쾌하다.
우리는 감탄하기 위해서 산다.

이 결론은 내가 내린 것이 아니니 믿어도 된다. 일명 ‘짝퉁 슈베르트 교수’로 명성을 휘날리고 있는 김정운 교수의 주장이다. 그로 인해 나는 인간이 왜 사는지를 알게 된 셈이니 식사라도 제대로 한 끼 대접하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의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하루에 도대체 몇 번 감탄하는가다. 사회적 지위나 부의 여부와 관계없다. 내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다 할지라도, 하루 종일 어떠한 감탄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내 인생이 아니다. 바로 그만두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 돈으로 매개된 감탄이 없다면,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다.



- 김정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2009)



이렇게 되면 우리가 연애를 하는 이유도 아주 명료해진다. 감탄하기 위해서다. 감탄의 한자어 표기는 感歎이지만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感彈, 그러니까 '느낌의 총알'이라는 표현으로 바꿔도 좋을 것이다. 상대방을 발견한 뒤 나의 모든 세계가 뒤흔들릴 정도의 총알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그 상황을 연애라고 부른다.

그런데 예쁜 여자는 태생적으로 이 감탄이라고 하는 감정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왜곡된 인간관계와 기이한 에너지로 점철된 예쁜 여자의 삶 자체가 워낙 스펙터클한 까닭이다. 별의 별 경험을 다했다보니 웬만한 자극에는 이제 놀라지도 감탄하지도 않게 돼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감탄스러웠던 뭇 남자들의 사랑고백도 받다 보니 공통점이 발견되고 진부할 따름. 진실한 눈동자로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들의 욕망 귀결점이 결국 한 곳(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곳)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에도 예쁜 여자들은 이미 익숙하다. 그녀들은 남자가 뭔지, 연애가 뭔지를 너무 빨리 알아버린 불쌍한 인생들이다.

감탄에 둔감하다는 사실은 곧 예쁜 여자들이 보통 사람에 비해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웃지 않는 공주>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버전이 존재하는 이 설정은 예쁜 여자에 대한 훌륭한 우화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공주가 웃지 않았다는 사실, 따라서 그녀를 웃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왕위를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은 예쁜 여자에 대한 진실의 일부를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감탄할 것이 고갈된 사람이라도 웃음에는 반응한다. 기본적으로 웃음은 끊임없는 의외성을 그 바탕에 깔고 있는 까닭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개그맨들의 강점은 부각된다. 어떻게 하면 남을 웃길지, 어떻게 하면 통념을 뒤엎을 수 있을지를 매일같이 고민하는 개그맨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예쁜 여자를 매혹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즉 웃음의 유혹을 연습하는 셈이다.

개그가 갖고 있는 또 한 가지 강점은 청중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에 누가 있든 성역과 금기 없이 개그를 시도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개그맨이다.

평소였다면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할 예쁜 여자 앞이라 해도 개그맨의 가면을 쓴 채로는 짓궂은 장난도 걸 수 있고 그 안에 내밀한 진심도 훨씬 삼키기 쉽게 건넬 수 있다.

예쁜 여자의 입장에서도 이는 의외의 각도에서 파고드는 기습공격인 바, 몇 가지 우연적 요소들까지 잘 맞아떨어진다면 드디어 연애의 총알 한 방이 훌륭하게 발사될 수 있다.

자신과 코드가 맞는 개그를 구사하는 사람을 만남으로써 예쁜 여자는 비로소 감탄의 위대함을 체득한다. 거위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견한 물체를 어미로 각인하듯 예쁜 여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감탄의 주체, 즉 개그맨을 행복의 원천으로 각인한다. 인생이 살 만한 것이었음을 그로 인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결혼이 대수겠는가? 자신을 웃겨 주는 남자 앞에서 예쁜 여자는 안전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개그맨들이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이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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