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각자의 쓰임이 있다. 다만 쓰임의 크기와 모양새가 다를 뿐이다. 내 기준으로만 세상을 재면 오류가 잦다. 두루 본다는 건 다양한 관점으로, 때로는 남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두루 살피면 어긋남이 적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는 건 수치가 아니라고 했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내 지혜가 부족하면 남의 지혜를 빌리는 게 진짜 지혜다. 군자는 소인에게서도 배운다.

제나라 환공이 당대의 명재상 관중과 대부 습붕을 데리고 고죽국 정벌에 나섰다. 전쟁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봄에 시작된 전쟁은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혹한에 귀국길에 오른 환공은 지름길을 찾다 그만 길을 잃었다. 진퇴양난의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이런 때는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가 필요하다.” 그의 말대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가니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다.

길을 찾아 제나라로 돌아오던 병사들은 산길에서 식수가 떨어져 심한 갈증에 시달렸다.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에는 산 남쪽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고 그 아래를 파보니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 ≪한비자≫ 세림편에 나오는 얘기다.

한비는 이 이야기 끝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조차 배우려 하지 않으니 잘못된 일이 아닌가.”

‘늙은 말의 지혜’ 노마지지(老馬之智)는 하찮아 보이는 것일지라도 장점이나 지혜가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노마식도(老馬識道)·노마지도(老馬知道)도 뜻이 같다. 요즘엔 ‘경험으로 축적한 지혜’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누구도 모든 지혜를 품을 순 없다. 누구도 모든 앎을 담을 순 없다. 그러니 지혜는 나누고, 모르는 건 물어야 한다. 묻는 건 결코 수치가 아니다. 진짜 부끄러운 건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거다. ‘척’하면 잃는 게 많다. 앎도 잃고, 지혜도 잃는다. 늙은 말, 개미에게서도 배울 게 많은 게 인생이다.
[바람난 고사성어] 노마지지(老馬之智)-부족한 지혜는 빌려 써라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