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를 말한다" ⑨ 500,000번째로 예쁜 여자

밑바닥 현실 얘기에 치중하느라 예쁜 여자에 대한 개념 정의조차도 제대로 못한 채 논의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예쁜 여자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므로, 그 정의라면 언제 내려도 늦지 않는다.

잠시 뒤로 미뤄 두었던 상상력을 발휘할 시간이다. 눈을 감고, 오직 500,000명의 예쁜 여자로만 구성된 나라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예쁘다는 이유로 추방된 여성들에 의해 건국된 나라이니까 충분히 타인의 공분을 살 만한 미모의 소유자여야만 한다. 그곳의 모습은 어떨까?

50만 명이면 룩셈부르크 정도의 규모다. 아무리 외모를 중점으로 구성된 집단이라 할지라도 이쯤 되는 나라가 굴러가려면 세분화된 역할분담이 필요해진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한다. 누군가는 공장에서 일해야 한다. 또 누군가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연예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똑같은 메커니즘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지능, 학연, 지연 등의 조건과 함께 ‘외모’가 한 인생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시점이 온다는 말이다.

미모 순위 50만등에 해당하는 여자의 관점에서 이 나라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그녀 자신도 쫓겨나기 전에 살던 나라에서는 타인의 공분을 살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지 자기보다 예쁜 여자가 499,999명 더 있다는 이유만으로 추녀 취급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돼 버렸다. 그럼 이제 질문을 던져 보자.

과연 그녀를 예쁜 여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쁜 여자 50만 명으로 해본 관념적인 실험은 예쁜 여자에 대한 중요한 한 가지 진실을 도출시킨다. 그것은 바로 예쁜 여자가 인간유형의 하나라기보다는 일종의 상태(state)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점(點)이 아니라 선(線)이다. 저량(stock)이 아니라 유량(flow)이다.

50만등의 여자는 예쁜 여자의 칭호를 박탈당해 마땅하다. 누구도 면전에 대 놓고 ‘넌 나보다 못생겼어’라고 하진 않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녀가 가장 못났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대접이 전과 달라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젠 이전에 살던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공기 속에서 숨 쉬며 살아가야 한다.

그녀의 입장에서 일련의 상황은 매우 억울할 것이다.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세상의 대접이 달라지다니? 하지만 사실은 주변 사람들과 주고 받는 교류의 에너지야말로 예쁜 여자의 본질을 관통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직접 주창하여 개진하고 있는 가설 중에서 ‘3인 이론(three-person theory)’이라는 게 있다. ‘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그 사람 주변의 주요 인물 3인이 결정짓는다.’는 골자다.

예를 들어 취업을 준비하던 당신이 극단적인 경쟁률을 뚫고서 어느 중소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했다고 가정해 보자. 보수도 더 많고 보다 유명한 회사에 들어가지 못한 이 성과가 ‘실패’인 것인지, 그래도 요즘 같은 때에 자리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인 것인지 알쏭달쏭한 상황을 말끔하게 정리해 주는 건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변의 단 세 사람이다.

“실망이다. 너라면 좀 더 잘 해낼 줄 알았어. 내가 생각하는 너는 결코 이 정도에서 머물 사람이 아니야. 여기에서 멈추지 마. 좀 더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면 어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딱 세 명만 있어도 당신의 성과는 실패가 된다.

“회사 크기가 뭐가 중요해? 앞으로 더 좋아질 곳이잖아. 네가 들어가서 그곳을 더 가치 있는 곳으로 만들면 되지 않겠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굴하지 마. 너만의 선택을 한 네가 난 정말 자랑스러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딱 세 명만 있어도 당신의 성과는 성공이 된다.

결국 우리는 주변 3인의 바람에 응답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물론 가지고는 있을 것이다. 허나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예쁜 여자의 탄생과 소멸 역시 3인 이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한 사람의 예쁜 여자가 탄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이목구비가 아니다. 키와 몸무게도 아니다. 그녀의 ‘주변 공기’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주변의 공기가 그녀의 미모를 찬사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 한 인간은 비로소 ‘예쁜 여자’라는 이름의 상태(狀態)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구성과 평가가 달라지면 예쁜 여자의 칭호는 단숨에 날아갈 수도 있다. 500,000번째로 예쁜 여자처럼.

이제 비로소 우리는 예쁜 여자를 정의할 수 있다.

예쁜 여자란, ‘한 여자를 중심으로 일군의 주변인들이 그녀의 외모를 최우선으로 감각하고 있는 상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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